[기억할 오늘] 12.19
비투스 베링(Vitus Bering, 1681~1741)은 덴마크 윌란 반도 해안마을 호르센스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가 숨졌고 재혼한 어머니 가정은 부유했다고 한다. 배 다른 두 형은 코펜하겐 대학을 다녔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베링은 15살에 공부를 접고 선원이 됐다. 덴마크 포경선을 타고 북대서양을 누볐고, 네덜란드 해군에 입대했고, 북미 선적의 배로 카리브해까지 다녀왔다는 얘기도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항해사로 일하던 그가 노르웨이 출신 러시아 해군 함장의 주선으로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 발트함대 소속 해군이 된 건 23세이던 1704년이다.
10대말 20대 초 선원의 8년간의 이력으로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파란만장하지만, 그가 육지보다 바다, 그것도 낯설고 거친 바다를 좋아한 건 분명해 보인다.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는 제국주의 후발 주자였지만 그래서 더 역동적인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드센 유럽보다는 시베리아 너머의 땅, 아메리카에 관심을 품고 있었다. 이른바 북동항로 개척이었다. 그 임무를 해군 예비역 대령 베링(당시는 이반 이바노비치 베링)에게 맡긴 사연도 불분명하다.
1725년 1월 페테르스부르크를 출발한 베링 탐사대에겐 시베리아를 육로로 가로지르는 9,000여Km의 여정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오호츠크해를 건너 캄차카 반도에 도착한 건 이듬해 3월. 그들은 18m 길이의 돛배 ‘가브리엘’호를 건조해 7월 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북상했다. 그들이 아시아 대륙 동쪽 북단(나우칸 자치구)에 도달한 건 8월 15일이었다. 거기서 곧장 서진했다면 88km 너머의 알래스카 웨일즈에 닿았겠지만, 그들은 거쳐온 해로를 따라 북진, 미답의 북극해로 나아갔다. 베링은 그렇게, 아시아와 아메리카가 바다로 나뉘어져 있다는 걸 확인했다.
2차 탐사대는 1733년 3월 출발했다. 이번에는 두 척. 그가 지휘한 ‘세인트 피터’호와 부하 치리코프 대령이 이끈 ‘세인트폴’호 . 그들은 악천후에 난파- 표류- 좌초를 겪으면서 41년 알래스카를 발견했다.
베링은 12월 8일 캄차카 반도 남단 베링 섬(당시엔 아바차 섬)에서 괴혈병으로 별세했다. 아시아와 북미 사이의 바다에, 최초 발견자이자 항해자인 베링의 이름을 붙인 건 영국의 후배 탐험가 제임스 쿡(1728~1779)이었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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