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 가능성 더 높은 H5N8형
야생조류 분변서 새로 발견
살처분은 벌써 1800만마리 돌파
영암호 탐조객ㆍ어민 전면 통제
경남ㆍ제주까지 24시간 방역 돌입
“피눈물 난다는 말, 해도 우리가 해야지요.”
전남 해남군에서 닭 1만여 마리를 사육중인 김모(57)씨는 하루하루 속이 바짝 타 들어간다. 전국 가금류 농가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좀처럼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달 새 1,800만 마리를 집어 삼킨 ‘H5N6형’에 이어 2014년 창궐한 ‘H5N8형’이 새로 출몰했다는 소식에 시름이 깊다. AI 주범으로 꼽혀온 가창오리 떼도 본격적으로 날아들기 시작,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전국 지자체들도 시베리아에서 머물던 가창오리 본진의 국내 상륙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전남 해남군은 18일 가창오리 대표 도래지인 영남호의 출입을 전면 통제했다. 인적이 뚝 끊긴 영암호는 이날 스산한 분위기마저 자아냈다. 전날 가창오리 떼 30여만 마리가 목격된 호수 내 뜬섬으로 들어가는 편도 1차선 주 진입로 입구 양쪽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군은 아예 영암호 내 간척지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과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민의 출입까지 막고 있다. 영암호 주변 주요 진입도로 12곳에는 볏단을 흰색 비닐로 단단히 말아 놓은 곤포 사일리지와 바리케이드를 이용한 ‘차단벽’을 설치했다. 영암호 주변 곳곳에 출입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대거 내걸리고 방역과 예찰활동이 수시로 이뤄지면서 지난주부터는 철새를 보려는 탐조객의 발길도 뜸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부 어민들은 당국의 지침을 어기고 어로활동을 강행, 불안감은 여전했다. 이날도 소형기선저인망(일명 고데구리) 등 어선 3척이 뜬섬 주변에서 철새를 내쫓는 모습이 포착됐다. 환경단체 ‘자연사랑 메아리’ 박종삼(51) 대표는 “이달 말까지 10만~20만 마리의 가창오리 떼가 추가 유입될 것”이라며 “철새가 AI를 옮기는 매개체라면 철새가 월동지에 오래 머물도록 잡아두는 것이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AI 안전지대’로 불리던 영남권 역시 방역망이 뚫려 비상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는 이날 경북 경산시 하양읍 환상리 남하교 하류에서 지난 12일 발견된 큰고니(천연기념물) 한 마리 사체와 부산 기장군의 한 농가에서 최근 폐사한 토종닭에서 AI 바이러스(H5N6)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부산 등 해당 지자체는 낙동강 을숙도 출입을 전면 통제하는 등 방역의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올 겨울 AI의 마지막 청정지대인 경남과 제주지역은 지난 16일 정부의 AI위기경보 ‘심각’단계 상향 조정에 맞춰 24시간 비상방역체제에 돌입했다. 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 따오기 복원센터는 천연기념물 따오기 지키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AI가 확산한 수도권에서는 동물원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있다.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과 서울 광진구 서울어린이대공원 내 동물원이 전날부터 임시 휴장에 들어갔다. 전날 안성천 야생조류 분변시료에서 급속도로 퍼진 H5N6형과 다른 H5N8형 AI바이러스를 확인한 정부는 이르면 19일 가축방역심의회를 열어 대응방안을 논의한다. H5N8형은 조류의 체내에서 배양되는 바이러스의 양이 다른 혈청형의 100~1,000배에 달해 이에 감염된 개체가 잠복기 동안 죽지 않고 바이러스를 다른 개체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H5N8형은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사람에게 감염을 일으킨 사례는 없다.
송창선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금 세계적으로 다양한 혈청형의 AI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어 향후 새로운 혈청형의 바이러스가 추가적으로 더 들어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창원=이동렬기자 dylee@hankookilbo.com
영암=안경호기자 khan@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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