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재료 미생물 출처 싸고 공방
매년 10%씩 성장 세계 시장
소모전에 경쟁력 저하 우려
미용 시술에 쓰이는 보톡스 생산 기술이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우리나라는 해외로 유출될 경우 국가안보나 국민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을 수출하거나 외국에 이전하려는 기업은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61개 국가핵심기술 가운데 보톡스도 포함돼 있습니다.
보톡스의 원료는 보툴리눔이라는 세균입니다. 보툴리눔균은 생화학 테러에 쓰일 수도 있는 강력한 독성 물질을 만들어 냅니다. 근육을 마비시키는 이 물질을 일시적인 주름 개선 효과에 쓰도록 만든 게 바로 보톡스입니다. 정부는 우리 기업들의 의료용 보톡스 제조 기술이 우수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보톡스 제조업체들은 보툴리눔균의 출처를 둘러싸고 수개월째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메디톡스는 지난달 자사가 보유한 보툴리눔균의 유전자 정보를 공개하며 타사들이 이를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경쟁사들이 유전자 공개를 통해 보툴리눔균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게 메디톡스의 주장입니다. 그러나 대웅제약과 휴젤은 자체 기술로 보툴리눔균을 획득해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만큼 경쟁사 제품에 대해 근거 없는 의심을 중단하라며 반박하고 있습니다.
세 업체의 비방전은 최근 식약처의 중재로 일단락되는 듯했습니다. 3개사가 동의한다면 시판허가 심사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식약처가 중재안을 낸 것입니다. 그러나 곧 없던 일이 됐습니다. 대웅제약에 따르면 심사 자료에는 유전자 정보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메디톡스가 출처 규명 요구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심사 자료를 공개한 뒤에도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식약처로선 굳이 더 나설 이유가 없겠지요. 자사 보툴리눔균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 중인 휴젤은 이를 향후 법적 다툼에서 근거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입니다. 허가당국이 논란에서 발을 뺐으니 결국 업체들끼리의 법정 공방이 예고된 상황입니다.
현재 4조원 규모인 세계 보톡스 시장은 연 10%씩 고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보톡스 제조 기술을 자체적으로 확보해 상업화한 기업은 세계에서 7개뿐인데, 그 중 3개가 우리 기업입니다. 그러나 이번 논란으로 경쟁력은 훼손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럽고, 주가 하락으로 애꿎은 주주들도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제 소모적인 상호 비방을 중단하고 논란을 매듭지을 방안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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