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역사에 대중가요를 빼놓을 수 없다. 주말마다 무대에 오른 가수와 광장의 시민들은 저마다 촛불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했고 힘을 얻었다. 청와대를 바라보며 목청껏 애국가를 불렀고 외환위기로 대한민국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 희망을 준 노래도 광장을 다시 메웠다. 손에 든 촛불이 가슴을 치는 노랫말과 멜로디를 따라 흔들렸고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로 위기를 헤쳐 나가리라 다짐했다. 수십 년 간 시민 옆을 떠나지 않고 이들을 위로해 온 대중가요, 촛불이 불러낸 희망의 노래들을 꼽아봤다.
걱정말아요 그대
지난달 19일 제4차 촛불집회에서 익숙한 노래가 흘렀다. 가수 전인권이 투박한 목소리로 전한 ‘걱정 말아요 그대’가 광장에 울려 퍼지자 촛불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내 시민들은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를 다독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그런 의미가 있죠/우리가 함께 노래 합시다/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OST로 불려 더 익숙해진 그의 곡이었다.
전인권은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랑 노래로 만든 이 곡이 “(당시)참 멋있게 불려졌다”고 말했다. 전인권은 이날 “세계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가장 폼 나는 촛불집회가 되자”며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그야말로 부르짖는다는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의 애국가에 광장엔 일순간 엄중한 분위기가 감돌기도 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때 아무 말 없이 (광장에서) 반주 없이 처절하게 부르고 싶었던 노래”라며 애국가 선곡 이유를 밝혔다.
덩크슛
제3차 촛불집회. 생소하지만 흥겨운 주문이 광화문을 달궜다. 무대에 오른 가수 이승환이 1993년에 발표한 3집 수록곡 ‘덩크슛’이었다. 이날 자신을 “27년 차 가수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전 그냥 노래하는 가수고 국민들의 편”이라고 소개한 이승환은 광장을 메운 시민들을 향해 이렇게 요구했다. “치유의 주문을 외우고 싶어요. 샤먼 킹을 위해서. 덩크슛 후렴구 ‘야발라바히기야’를 ‘하야하라 박근혜’로 불러주세요.”
그러면서 한마디 보탰다. “7시간 동안 관저에 계셨다고 하는데 지금도 관저에 계실지 모르겠어요. 들리게끔 불러보겠습니다.”
시민들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이에 호응했다. 주문을 외워보자 하야하라 박근혜가 광화문에 울려 퍼졌고 집회는 한 순간 축제로 변했다.
상록수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깨치고 나아가/끝내 이기리라’
현 시국 상황과 국민의 염원을 이보다 잘 설명해주는 노랫말이 있을까. 가수 양희은은 지난달 26일 제5차 촛불집회를 예고 없이 찾아 무대에 올라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 없는 곡 ‘상록수’를 불렀다. 광장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우리들 가진 것/비록 적어도/손에 손 맞잡고/눈물 흘리니’ 양희은의 무게감 있는 목소리를 타고 쏟아지는 노랫말이 마치 현재 우리의 모습을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록수’는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을 당시 광고 음악으로 국민들에게 힘을 줬던 노래이기도 하다.
앞서 독재정권이 금지곡으로 지정했던 아픔이 서린 ‘아침이슬’과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하기도 한 그는 무대를 내려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당시의 벅차 오름을 전하기도 했다. “아침이슬은 46년째, 상록수는 39년째. 그렇게 파란만장한 노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불씨를 되살려 제게 돌려 주시니까, 그 분들께 진 그 큰 빚을 갚아야 눈을 감더라도 감고 떠날 수 있겠지요.”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요계 대표적인 민중가수 안치환이 특유의 허스키한 부르짖음으로 촛불 위를 넘실거렸다. 그는 제5차 촛불집회에 참석해, 과거에도 그래왔듯 시민들의 울분을 대변하고 위로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사람’을 ‘하야’로 개사해 시민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그는 노래를 부르기 전 “제 노래를 훼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가사를 바꿔 불러달라”고 말했고 시민들은 그의 요구대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함께 불렀다.
안치환은 이 외에도 ‘자유’ ‘광야에서’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시민의 울분과 시대정신이 담긴 노래를 잇따라 부르며 상처받은 시민의 마음을 보듬었다. 그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백남기 선생까지 스러진 무고한 생명들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아파했는가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른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조율
‘잠자는 하늘님이여/이제 그만 일어나요/그 옛날 하늘 빛처럼/조율 한 번 해주세요’
지난 3일 제6차 촛불집회를 수놓은 곡은 한영애가 1992년 발표한 ‘조율’이었다. 2011년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 김동욱이 불러 화제가 됐던 곡이다.
혼란스러운 시국과 맞물려 광장에 깊은 감동을 자아내기 충분한 곡이었다. 한영애는 이날 무대에 올라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반드시 올 것이다. 오늘 조율을 이뤄보자”며 자신의 노래를 열창했고 시민들 역시 이에 촛불로 호응했다.
그는 전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쓰러지지 않고 부러지지 않는 이들이 있기에 존재합니다. 이 땅의 아이들도 먼 훗날 그런 생각을 하게끔 우리 모두 버텨야겠죠. 제발 조율 한 번 해주세요”라며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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