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 기록이 곧 한국 축구의 역사죠.”
윤형진(37)씨의 말이다. 그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다. 대한축구협회 직원도 아니고 한국 축구와 관련된 아무런 직함도 없지만 ‘한국 축구 역사 복원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축구 기록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지닌 윤 씨는 지난 2005년에 지인 한 명과 함께 1945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대표팀이 치른 700여 경기의 기록을 담은 책을 펴냈다. 300여 페이지에 걸친 한글과 영문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을 보면 놀랍다. 당시 출판비가 모자라 애를 먹었는데 신태용(46) 20세 이하 대표팀 감독이 자금을 지원해 책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반세기가 넘는 역사에 비해 한국 축구의 기록 보존은 낙제점에 가깝다. 전설이라 불리는 ‘차붐’의 정확한 A매치 기록도 찾기 어렵다. 축구협회 홈페이지는 135경기 58골로 표기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정치다. 1990년대 이전 기록지가 상당 부분 분실됐기 때문이다. 축구협회는 2004년부터 옛날 기록지를 찾아 역사를 재정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윤 씨는 송기룡 축구협회 홍보실장의 요청으로 ‘민간 조사요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7년과 지난 달, 두 차례 동남아시아를 방문했다. 축구협회 직원 중 축구기록 정리에 남다른 애착을 갖고 있는 송 실장과 윤 씨는 20여 년 전 PC통신 하이텔에서 만나 인연을 맺었다.
윤 씨는 2007년 홍콩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태국의 도서관과 주요 언론사를 찾아 옛날 신문을 샅샅이 뒤졌다. 큰 수확도 있었다. 홍콩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신문에서 한국이 1948년 7월 6일 홍콩과 치렀던 사상 첫 A매치의 득점자를 찾았다. 그 전까지 이 경기는 한국이 5-1로 이겼다는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득점자는 몰랐는데 고(故) 정남식 선생이 4골, 고 정국진 선생이 1골을 넣었다는 걸 발견했다. 득점 시간이 없어 누가 첫 A매치 골의 주인공인지는 알 수 없지만 둘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확인한 셈이다. 윤 씨는 지난 달에 두 번째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태국을 다녀왔다. 그는 “누락된 3~4경기를 찾긴 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큰 성과는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윤 씨는 방대한 축구 자료로 유명한 사이트 ‘RSSSF’의 회원이기도 하다. 축구 기사에 자주 인용되는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와 헷갈리는 사람이 많지만 엄연히 다르다. RSSSF는 전 세계 ‘축구 기록 마니아’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다. ‘이라크의 윤형진’ ‘노르웨이의 윤형진’이 모였다고 보면 된다. 윤 씨는 “이라크에 친한 회원이 있다. 나처럼 이라크의 A매치 기록을 모두 모으는 친구인데 이라크가 전쟁을 많이 겪은 탓에 유실된 기록이 많아 힘들어한다. 한국이 중동에서 치른 A매치를 찾다가 이라크 부분을 발견하면 자료를 보내준다. 물론 그 친구도 똑 같이 나를 돕는다. 이런 과정이 한국을 넘어 아시아 나아가 세계 축구의 과거사를 찾는 일이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북한 기록 발굴에 관심을 갖고 있다. 윤 씨는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적으로 북한 사이트에 접속할 방법이 없어서 어렵다”고 웃었다. 북한이 워낙 폐쇄적인 탓에 예전에 거의 홈경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팀의 기록을 찾아 역추적해가며 퍼즐을 맞추듯 찾아가고 있다.
축구협회와 윤 씨의 노력 덕에 역사 복원 프로젝트는 마무리돼가고 있다. 아직 찾지 못한 A매치 기록이 50경기쯤 된다. 윤 씨는 “기록을 뒤지는 건 생각보다 고통스런 일이다”면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할 작업이다”고 의지를 보였다. 한국 축구 역사의 빈칸은 언제쯤 다 채워질 수 있을까.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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