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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살며] 100년이 지나도 생생한 감동

입력
2016.12.16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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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오래간만에 덕수궁 현대미술관을 찾아갔다. 비 오는 날이었다. 입장권을 사느라고 남편과 함께 매표소 앞에서 줄 서 있었다. 줄 선 사람이 많았고 그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모두 다 이중섭이라는 예술가를 만나러 온 것이다.

올해 6월 초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개최했던 ‘백년의 신화’라는 전시회를 이번에 놓치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에 우리도 9월 그 날 저녁 서둘러 덕수궁을 방문했다.

1916년에 태어나서 1956년에 세상을 떠난 이중섭의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마련된 이 전시회는 예상대로 인기를 많이 끌었으며 대단한 문화예술 행사였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해외 유명 미술관 소장 작품을 빌려 모아 놓아, 한 번에 제일 많은 이중섭 작품을 볼 기회이기도 했다. 그날 밤 전시장을 찾았던 우리 둘은 기대 이상의 기쁨과 희망을 얻었다.

덕수궁을 떠난 후에도 계속 이중섭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미 있게 천천히 구경했던 유화, 은지화, 엽서화, 사랑의 편지 등의 감동을 품에 안고 집에 들어갔다. 인생이 뭔지, 부부의 사랑이 뭔지, 예술가들의 활동과 정신세계가 어떤 건지 생각 안 할 수 없었다.

한국전쟁으로 200만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고 살아남은 사람도 피란생활을 하면서 말도 못하는 고생을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을 나는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는데 그날 전시된 이중섭의 작품들에는 한국 근대사의 아픔이 담겨있는 작품들이 여럿 있어서 그것을 통해 아픔을 감정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점들이 매우 좋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민족의 상징인 소를 강력한 기법과 놀라운 의지로 그린 이중섭은 대단하다. 그의 황소 유화를 제주도 서귀포 이중섭 미술관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중섭의 ‘소’보다 이중섭의 ‘게’를 좋아한다. 은지에 게를 많이 그렸다. 양담배를 싸는 종이에 입혀진 은박을 이용해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름답고 여기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훌륭한 것 같다. 이전에 열렸던 전시들과 비교해서 이번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서는 처음으로 다양한 은지화를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이중섭은 1951년 부산에서 제주도로 거처를 옮기는데 여기서 약 1년간 가족들과 가난한 피란생활을 했다. 1평 정도밖에 안 되는 방에서 4식구가 함께 살았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일본에서 만났고 거기서 아직 살아 있는 이중섭 부인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는 그 서귀포에서의 1년간이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 당시 그림으로 남긴 가족 일상생활의 장면들은 평범하면서 상당히 감동적이다. 바다에서 게 잡으려는 아이들, 물고기를 안고 게를 타는 아이들, 자기 두 아들과 아내의 모습 등을 보면 그의 감정, 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예술에 관한 굉장한 열정도 느낀다. 이렇게 드로잉의 주제와 내용이 간단하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창조적 예술은 드물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이 많아 1952년에 사랑하는 가족이 일본에 가버리는 바람에 이중섭이 홀로 한국에 남았다. 그 시기 사기당해 빚에 시달렸고, 술도 많이 마시고 정신적 질환으로 불행한 말년을 보냈다. 그때 아내와 아이들에게 일본어로 써준 많은 사랑의 편지들이 남아 있다. 귀여운 그림까지 싣고 있는 그 편지들을 통해 이중섭의 순수함, 쓸쓸함, 안타까움이 피부로 느껴진다.

100년 전 적십자병원에서 죽기 전 몸도 아프고 마음이 외롭고 갈 데 없었던 이중섭 예술가는 서울에 있는 몇 명의 친구 집에서 살았다. 그 친구 중에 한묵이라는 화가가 있다. 50년 이상 프랑스에서 활동한 한묵 선생님은 지난달에 102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타계했다. 지금 두 화가는 하늘에서 함께 놀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림을 좀 더 그려 보내줬으면 좋겠다.

마틴 프로스트 전 파리7대 한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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