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씨), ℉(화씨)는 김씨, 박씨다?
이게 뭔소린가 싶은데 진짜입니다. 1742년 물의 어는 점과 끓는 점을 기준 삼아 100등분 한 온도 체계를 만든 사람이 스웨덴의 천문학자 셀시우스(Celcius)입니다. 이 셀시우스를 중국 사람들이 음차하면서 섭이사(攝爾思)라 불렀습니다. 코카콜라를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 부르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어이 김씨~! 장사 잘 되는가?” “어이 박씨~! 어디 다녀오는가?”하듯이 “어이 섭씨(攝氏)~! 오늘은 추운가?” 하게 된 겁니다.
화씨도 설마? 네. ‘설마’는 사람을 아주 잘 잡습니다. 사람의 체온을 기준으로 삼아 180등분한 화씨 개념은 1724년 독일 물리학자 파렌하이트(Fahrenheit)가 만들었습니다. 이 이름을 중국 사람들은 화륜해(華倫海)라 음차했습니다. 해서 ‘어이 화씨~!’라고 부르게 된 겁니다. 날씨가 어떠냐는 말을 주고받을 때는 춥다고 ‘씨’에다 유독 힘줘 발음할 게 아니라, 뭐랄까 앞으로는 왠지 조금 더 온도를 친근하게 대하는 느낌으로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가 자라면 질문도 자랍니다. 그래도 그 동안 어디선가 주워들은 풍월은 있다고 다른 것들이야 어째 저째 대답을 하겠건만, 요령부득인 게 바로 ‘과학’입니다. 밥 잘 먹고 돌아오던 길에 ‘힌덴부르크호의 폭발 사고’와 ‘현대차의 수소자동차’ 간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면, 저 또한 자괴감이 들고 피눈물이 납니다.
화학을 전공한 김병민 과학 칼럼니스트가 쓴 ‘사이언스 빌리지’(동아시아 발행)는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책입니다. 과학이 재밌고 좋아 과학을 공부한 아빠는, 정작 중학생 아들이 “이거 완전 핵노잼!”을 외쳐대며 암기에 바쁜 모습을 봤습니다. 외워대는 게 아니라 상상하고 궁리해보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책은 실제 아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쓰였습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어느 날 편의점에서 들렀던 아들은 시원한 마실거리를 찾아 진열장을 둘러보다가 유독 ‘갈색’ 유리병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피로회복제, 드링크제, 감기약병에서 맥주병까지. 왜 병 색깔은 죄다 ‘갈색’이어야 할까요. 이렇게나 다들 갈색병인데, 소주병은 왜 홀로 녹색을 고집할까요.
요놈, 어느 날 꾀가 슬슬 납니다. 이 닦으려니 귀찮은 겁니다.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저기 옆에 돌아다니는 반려견 ‘초롱이’가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잠깐, 그런데 평생 양치질 한 번 안 하는 개는, 어떻게 충치 한번 걸리지 않을까요. 이 닦기 싫은 아들이 개를 부러워한다면, 기름진 음식 마음껏 먹고 싶은 아빠는 곰이 부럽다고 합니다. 곰은 겨울잠을 잔다는 이유로 한번에 음식을 엄청 먹어둡니다. 사람이 그렇게 먹었다가는 고혈압, 당뇨병 같은 성인병에 걸리고 말 겁니다. 곰은 어떤 원리로 그렇게나 많은 음식을 한번에 먹고도 별 탈이 없는 걸까요.
‘사이언스 빌리지’는 아빠와 아들이 손잡고 떠나는 과학여행입니다. 그렇다고 손발 오글대는, 재미있는 상식 대백과 수준의 서술이라 얕잡아 본다면 큰 코 다칩니다. 118가지 원소 주기율표를 실어두곤 이 원소들의 구체적 쓰임새까지 설명하는, 꽤나 깊은 대목들도 여럿입니다. 성균관대 물리학과 연구교수인 김지희 일러스트레이터가 만화 느낌 나게 그려놓은 그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이제 우리 저자가 쓰고 그린, 제대로 된 교양과학 입문서가 나올 때도 됐다는 출판사의 노력이 돋보입니다.
조태성 기자 amoraf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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