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투자 자금 210억弗
한 달 새 신흥국서 빠져나가
금리 인상으로 이탈 가속 전망
유럽ㆍ日도 앞다퉈 돈줄 죄기
신흥국 달러 표시 부채 늘어나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 세계 투자자산의 대이동에 시동이 걸리면서 가뜩이나 불확실성이 큰 세계경제에 또 다른 충격을 몰고 올 거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의 경쟁적인 돈 풀기로 신흥국에 쏠렸던 투자자금이 미국 금리인상을 계기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신흥국발(發)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외에도 다른 선진국의 통화정책도 긴축으로 돌아서고 있어 신흥국의 자본유출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신흥국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도 배제할 수는 없다.
15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한 달간(11월 8일~12월 7일) 신흥국 주식형펀드에서 90억8,100만 달러, 신흥국 채권형펀드에서 119억6,5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한 달 사이 무려 210억4,600만달러(약 24조8,000억원)가 신흥국을 탈출한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선진국 주식형펀드에는 422억7,800만 달러가 순유입됐고, 이 돈의 99%는 북미지역에 몰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만으로 상당량의 투자자금이 몰린 것이다. 서비룡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만큼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동하는 투자자금 이동 속도는 빨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돈줄 죄기에 나선 건 미국만이 아니다. ECB는 지난 8일(현지시간) 통화정책회의에서 자산매입프로그램 운용기간을 내년 말까지 9개월 연장하기로 했으나, 현재 월 800억 유로인 자산매입 규모를 내년 4월부터 월 600억 유로로 줄이기로 했다. 유로존과 함께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해 온 일본도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은행의 올해 국채 순매입액은 71조7,000억엔(12일 기준)으로 일본은행이 제시한 연간 국채매입목표(80조엔)는 물론, 지난해 같은 기간 국채 순매입액(75조3,000억엔)에도 한참 못 미친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통화 완화 정책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돈줄 죄기에 직격탄을 맞는 건 신흥국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강달러 현상이 계속되고, 각국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올릴 경우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신흥국의 부채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채는 달러로 표시돼 있어 신흥국 통화가 약세가 되면 갚아야 할 돈은 더 늘어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신흥국 기업들의 2016~2018년 상환해야 할 채권 만기 상환액이 2013~2015년보다 40% 많은 3,400억 달러(약 401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중국 경기 둔화로 이미 타격을 입은 신흥국 기업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거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최근 신용등급을 측정하는 118개 신흥시장 은행 중 33%가 부실대출 등으로 신용등급 하락 위기(올해 3분기 기준)에 처했다고 분석했다.
투자자금 이탈을 최소화하려면 신흥국도 금리 인상에 나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침체된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HSBC는 “신흥국에게 내년은 2009년 이후 가장 힘든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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