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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할머니, 우리 할머니

입력
2016.12.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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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맞벌이 부부로 살며, 육아를 위해 계속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첫째가 태어난 직후부터 몇 년간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는 친정에서 독립하여 평일에는 입주 도우미 아주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둘째 생후 1개월부터 함께 지내게 된 아주머니와의 생활이 벌써 5년째에 접어든다.

가족이 아닌 남과 한집에서 생활하는 일에 대해 겪어 보기 전에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 좋게도 나와 잘 맞는 좋은 분을 만나서 큰 어려움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우리 딸은 외할머니는 ‘XX동 할머니’, 친할머니는 ‘대구 할머니’라고 사시는 지역을 붙여서 부르고, 함께 사는 도우미 아주머니는 ‘우리 할머니’라고 부른다. 양가 부모님이 들으면 섭섭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매일 함께 하는 분이 더 가깝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가족이 꼭 혈연으로 묶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함께 의지하고 살아가면 가족과 같은 관계가 아닐까 그런 생각도 종종 드는 것이다.

‘우리 할머니’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라, 내가 일하는 것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일하는 중에는 나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는 나에게 전화를 하는 법이 거의 없다. 한번은 집에 들어가 보니 딸이 열이 나고 아파서, 물어보니 낮부터 열이 나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전화라도 주시지 그랬어요” 했더니 “일하는데 신경 쓰이고 바쁠까 봐 연락 안 했다”고 하신다. 한편으로는 연락을 안 하신 것이 섭섭하기도 하면서도, 나를 그만큼 배려하시는 마음 씀씀이에 감사하기도 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지만 이렇게 서로 배려하고 도우며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참 소중한 인연이구나 싶다. 실은 내가 바쁜 워킹맘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할머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도 ‘우리 할머니’와 우리 딸과의 끈끈한 관계를 보고 종종 “친할머니나 외할머니인 줄 알았다”며 “어떻게 이렇게 좋은 분을 구했냐”며 물어보기도 한다. 실은 ‘우리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온 첫 번째 입주 도우미이기 때문에 운이 정말 좋았다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은 없다. 다만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 역시 ‘우리 할머니’가 신경 쓰이는 일이 없도록 배려하고 존중하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다.

바쁜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내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하루의 일부에 불과하고 아이는 나머지 대부분 시간을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도우미 아주머니 등 다른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보내게 된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워야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도 가장 잘 보살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 쓰이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이들이지만 방치하게 되고 질문에 대꾸해주는 것도 귀찮아질 때가 있다. 아이를 돌보는 사람의 마음이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제나 내가 아이 옆에 있을 수는 없으니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내 아이를 돌보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아이들에게 그리 헌신적인 엄마가 아니라서, 내 아이를 돌보는 다른 분들에게도 크게 욕심 부리거나 기대하지 않는 면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동안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우리 할머니’와 같이 내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분들에게 그냥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말 외에는 다른 부탁이나 요구를 하지 않았다. 특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수많은 아이를 함께 돌보는 선생님들의 수고로움이 느껴져서 더욱 그랬다. 많은 사람이 내 아이만 특별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보다는 모두의 아이가 다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일 때, 내가 아이를 하루 종일 돌보지 않아도 내 아이가 어디서든 행복하게 자랄 수 있을 것 같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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