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온탕 왔다갔다, 배우로서 욕심
‘내부자들’ 안상구와는 또 다르죠”
배우 이병헌(46)의 연기는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눈빛만으로도 감정 표현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배우니 말이다. 악역을 맡은 영화 ‘마스터’(21일 개봉)에서도 그의 연기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조 단위 사기 사건을 벌이는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로 ‘빙의’된 이병헌은 툭툭 내뱉는 말투와 강렬한 눈빛만으로도 관객의 기대에 부응한다. 어느 역을 맡아도 대체불가라는 평을 받고 있는 그를 13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병헌은 “‘마스터’가 신나고 경쾌한 영화”라며 “관객들이 진현필이라는 인물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고 했다. “끝까지 야비한 인간으로” 보이고 싶었다는 것이다. ‘마스터’는 ‘악의 화신’ 진현필과 그를 잡으려는 경찰청장 직속 지능범죄수사대 팀장 김재명(강동원)의 대립관계를 중심축으로 삼은 영화다. 둘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박장군(김우빈)의 줄타기도 이야기의 줄기를 차지한다. 영화는 선과 악을 극명한 대비를 통해 긴장감을 제조하면서 이의 해소를 통한 쾌감을 빚어내려 한다.
진현필은 때와 장소,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면모를 보인다. 돈을 뜯어내기 위해 수 천 명의 사람들 앞에서 연설할 때는 온화함을 풍기고, 동료 사기범 김엄마(진경)와 박장군에게는 살가우면서도 냉정하다. 이병헌은 다양한 진현필의 모습에 도전하고픈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매번 변화하는 인물을 그리는 게 흥미로워 보였다”는 게 출연의 이유.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인물이지만 진현필은 조희팔과 다르다. 당초 시나리오에 있던 진현필의 외모나 말투, 표정은 이병헌이 모조리 바꿨다. 도입부 연설 장면도 이병헌의 요구로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마스터’의 조의석 감독이 “연설문 고치는 게 살이 빠질 정도로 힘든 작업”이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이병헌은 집요했다. “(관객들이)진짜 야비하고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면 배우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일”이라고 이병헌은 생각했다.
이병헌은 그의 뜻대로 완벽한 악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진현필은 이병헌이 연기한, 영화 ‘내부자들’의 깡패 안상구를 떠올리게 한다. 이병헌은 “두 캐릭터가 거침 없고 무식한 말투를 쓰니까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안상구는 세월의 흐름으로 사람의 외모나 성격이 변하지만, 진현필은 사기를 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마스터’는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을 한 자리에 모은 것 만으로도 ‘천만 관객 예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필리핀에서 자동차 추격 장면을 촬영하는 등 제작비 100억원을 들여 볼거리에도 공을 들였다. 이병헌은 정작 영화의 외형보다는 “몸을 사리지 않은 강동원”과 “나이와 경력에 비해 ‘한 판 제대로 논’ 김우빈”의 노력을 강조하며 박수를 보냈다.
할리우드에 자리 잡은 이병헌은 후배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 돕고 있기도 하다. 할리우드에서 출연 제의를 받은 영화가 자신과 맞지 않을 땐 후배들을 대신 소개해준다. “거창하게 (선배로서의)책임감은 아니고, 막연하게 (후배들이 할리우드와)잘 연결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죠.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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