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기간 폭로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를 통해 공개된 민주당전국위원회(DNC) 이메일과 존 포데스타 선대위원장의 개인 이메일 등이 보안대책 부실로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선거 막판에는 정보기관들이 러시아의 해킹 사실을 알고도 반격이나 공개대응을 주저한 사실도 드러났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3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민주당과 백악관이 러시아 해킹과 관련해 경고 신호를 무시하거나 안이하게 대응하고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민주당이 러시아 해커에 말 그대로 ‘문을 열어주는’ 과정을 공개했다.
NYT에 따르면 민주당은 2015년 9월부터 있었던 연방수사국(FBI) 경고를 무시했으며 해킹 공격에 대응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이메일이 유출된 뒤였다. 에이드리언 호킨스 FBI요원은 지난해 여름 러시아 해커가 DNC의 컴퓨터 가운데 하나 이상을 장악한 상황이 드러났다며 민주당에 수 차례 연락했지만, DNC 보안 담당자 야리드 타민은 “그가 정말 FBI 요원인지 알 수 없어”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다. DNC가 외부 침입 흔적을 발견하고 대응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듬해 4월이었다. DNC가 고용한 해킹대응기업 크라우드스트라이크는 서로 다른 해커 그룹 2개가 이미 침입해 자료를 빼낸 뒤였음을 밝혔다.
선거 직전 ‘10월 서프라이즈’로 공개된 힐러리 클린턴 캠프 존 포데스타 선거대책본부장의 이메일은 ‘피싱(phishingㆍ가짜 이메일을 통해 비밀번호 등을 입력하도록 유도, 개인정보를 빼내는 수법)’에 당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3월을 전후해 다수의 미국 정당 근무자들에게 피싱 이메일이 대거 발송됐고 이 중 하나가 포데스타 위원장의 이메일로 들어온 것이다. 사소한 ‘오타’도 이메일 유출에 한 몫 했다. NYT에 따르면 이메일을 검토한 한 보좌관이 “그 메일은 진짜가 아니다”라는 메시지에 오타를 내 “그 메일은 진짜다”라고 전하는 바람에 포데스타 위원장의 이메일은 러시아 해킹 그룹의 손에 들어갔고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됐다.
주요 정보기관이 러시아를 향한 사이버전 반격이나 공개대응을 주저한 정황도 포착됐다. 이들은 양당 전당대회가 한창 진행된 7월부터 백악관에서 러시아 해킹 관련 상황실 회의를 열었으나, “러시아와의 정보전이 격화될 수 있다” “미국 선거제도 자체를 불신한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격이나 공개 대응을 조언하지 않았다. 도나 브라질 당시 DNC 임시의장은 백악관의 대응이 미진한 데 불만을 품었으며 라인스 프리버스 당시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의장에게 공동성명 발표까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캠프는 러시아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커 그룹이 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한 문건이 미국 대선에서 최종적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NYT는 미국 언론도 러시아의 해킹 의혹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주요 언론이 위키리크스의 폭로를 인용해 보도하면서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선전수단으로 전락하게 된 셈”이라고 자조적으로 보도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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