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그 집이 그대로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A는 조금 자신 없이 말했지만 사당역 뒤편 골뱅이 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15년쯤 만에 오는 것이라며 친구는 헤벌쭉 웃었다. 강퍅하게 생긴 여주인은 골뱅이무침과 번데기탕을 내어 왔다. “15년이 아니야. 18년은 된 거 같아. 내가 막 서울 올라왔을 때니까.” 서울에 처음 직장을 잡고 그녀는 잠깐 친구 집에 얹혀살았단다. 낯선 서울과 낯선 사람들, 겨우 이십대였던 A가 주눅 든 얼굴을 하고선 친구와 종종 골뱅이무침을 먹던 식당이라고 했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번데기를 꼭 세 알씩 떠먹으며 A의 서울 입성기를 들었다. 나에게도 서울의 첫 직장에서 어리바리 뛰어다니던 기억이 아슴하게 남아있다. 지하철 2호선에서 시달리느라 절반은 지각이었지만 그래도 용케 잘리지는 않았다. 지각을 하면서도 퇴근 시간은 따박따박 지켰으니 나는 꽤나 뻔뻔했던 모양이다. 다시 2호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집 앞 시장에 들러 숙주나물과 파프리카를 샀다. 낡고 좁은 아파트 복도에는 세발자전거며 유모차, 장독대까지 나와 있어 나는 자주 투덜거렸다. 숙주를 헹궈 파프리카와 함께 들기름에 굴소스를 뿌려 살짝 볶아내면 제법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밤이 되면 복도에서 낮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잠투정이 많은 아기를 재우려 옆집 할머니가 아기를 업은 채 복도를 하염없이 걸으며 자장가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지 하나도 짐작하지 못해서 매일 머리가 아팠고 또 매일 설렜던 시절이었다. 사당역 뒤편 골뱅이무침은 어마어마하게 시었다. A와 내가 사회 초년병 시절 부닥쳤던 세상의 맛이 그랬듯 말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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