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도서관 가기를 좋아했고, 그 습관이 어른이 된 나를 만들었고 여전히 그곳은 나를 이끈다. 요즘 도서관에 가면 늘 맨 처음 들리는 곳은 동물과 수의학 관련서적 코너다. 우리나라의 동물 분야에 대한 관심의 정도를 말해주듯 반려동물 관련 서적이나 학술서적 그리고 외국 유명동물학자의 논문 같은 번역서적 몇 권 빼놓고는 정작 일반인들까지 널리 재미있게 읽을 만한 신간 책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도 별로 변화가 없구나! 하고 문학코너로 되돌아서려는데 그 책들 사이에서 아주 조그만 작은 책이 하나 눈에 띄었다.
‘명상하는 개’ 라는 소책자였다. 개를 또 너무 의인화시킨 서적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살짝 가지고 봤는데 그 자리에서 금방 한 권을 섭렵해 버렸다. 개들의 표정과 행동을 위대한 명상가들의 명문장들과 함께 연결시켜 놓았는데 거부감 하나 없이 술술 읽혀지는 멋진 책이었다. 물론 나만의 감정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생각해 보면 동물들처럼 훌륭한 명상가가 또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동물들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마음을 비우는 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시골집의 개들 대부분은 하루 종일 마당에 묶여있어도, 주인이 1년 내내 산책 한번 안 시켜주고, 자기 주변에 오물이 그득 쌓이게 놔둬도, 그런 못된 주인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기는커녕 그가 돌아오면 오히려 꼬리치며 한없이 밝은 모습으로 맞이한다. 방랑하는 길고양이들의 생애도 노숙자들의 삶과 별반 다름없지만 항상 털 다듬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한 점 햇빛이 나는 그 좁은 자리에서 아침에 나와 늘 여유 있게 졸고 있는 것을 보면 ‘정말 쟤들은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런 길들여진 동물들뿐 아니라 야생동물들의 삶을 봐도 평생 똑같은 먹이와 항상 쫓고 쫓기는 공포와 긴장이 반복되는 삶을 살지만 휴식할 때 그들의 표정은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들은 진정한 은둔자이자 자연주의자들인 것이다.
그에 비해 사람의 생활은 늘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을 쫓아다녀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답답해한다. 쉬더라도 가만히 쉬지 못한다. 꼭 TV나 휴대폰, 음악 같은 걸 곁에 두고 보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정신은 계속 달음박질을 치고 있어 진짜 쉬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휴식이라면 꿈도 못 꿀 정도의 깊은 잠에 빠져들 때뿐일 것이다.
동물들은 졸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다가가면 바로 깨어나 버린다. 그들에게 인간의 잠 같은 깊은 마취 상태의 잠의 형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깨어있어도 정신은 항상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결코 피곤해 하지는 않는다. 가끔 당나귀가 아무런 동작도 않고 멍하니 혼자서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다든지, 사자가 대자로 누워서 하늘을 맹하니 보고 있는 것을 보면 도대체 지금 저들은 무얼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여러 동물들을 봐오고 그들이 지루한 일상을 어떻게 견디어 내는 지에 대해 항상 궁금해 왔던 것도 같은데, 이런 걸 명상과 연결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동물들의 쉼이 단순한 휴식이 아닌 마음을 비우기 위한 일종의 명상의 시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동물들 주변에서 뭔지 알 수 없지만 항상 ‘평화나 평안’이라는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들의 끊임없는 정신수양에 있음을 여태 모르고 있었다. 결국 우리가 명상하는 궁극적인 목적 또한 운명에 순응하고 스스로 위로 할 줄 아는, 동물다워지고 싶어 하는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종욱 수의사(광주우치동물원 진료팀장,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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