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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참여 이끄는 디지털 민주열차

입력
2016.12.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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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6차 촛불집회. 사진공동취재단
12월 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있었던 6차 촛불집회. 사진공동취재단

파고다 공원과 인사동 골목에서 마주친 이들이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고 쪽지를 주고받았다. 쪽지에 쓰인 글씨는 '향린교회'. 그날 아침에서야 비로소 정해진 모임 장소의 이름이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비밀스럽게 전해졌다.

1987년 5월 27일 명동 향린교회. 경찰들의 눈을 피한 재야단체 인사들은 이곳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약칭 국본)' 결성식을 가졌다. 향린교회는 역사에 6월 민주항쟁의 성지로 기록된다.

3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1987년의 비밀스러운 쪽지는 보안 채팅과 메시징 기술이 대체했다. 당시 국본이 6월 10일 집회를 알리기 위해 만들어 뿌린 20만장이 넘는 전단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의 '좋아요', 혹은 '공유'와 닮았다. 더 많은 이들이 쉽고 빠르게 일상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술이 시민을 돕고 있다.

국회의원에게 박근혜 탄핵 찬성을 요구했던 '박근핵닷컴' 홈페이지
국회의원에게 박근혜 탄핵 찬성을 요구했던 '박근핵닷컴' 홈페이지

지난 9일,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이 실시됐다. 국회의원 300명 중 찬성에 표를 던진 의원의 숫자는 234명. 탄핵소추안은 가결됐고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지난 9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한 이후 두세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힘을 실어준 이들은 단연 시민들이다. 탄핵소추안 표결에 앞서 지난 1일 문을 연 '박근핵닷컴' 홈페이지는 국민들이 자신의 지역구 의원을 찾아 탄핵안 발의와 찬성을 청원할 수 있도록 했다. 총 92만8,041명의 시민이 국회의원들에게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무소속 의원 172명 전원이 이 홈페이지를 통해 '탄핵 찬성'으로 응답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80%가 찬성한다고 응답했는데, 국회의원의 80%가 탄핵 가결에 표를 던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갤러’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내용 중 일부. 제보자는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던 7일 오후 9시쯤 박영선 의원에게 카카오톡으로 ‘결정적 영상’을 제보했다.
‘주갤러’와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고 받은 카카오톡 내용 중 일부. 제보자는 청문회가 진행되고 있던 7일 오후 9시쯤 박영선 의원에게 카카오톡으로 ‘결정적 영상’을 제보했다.

탄핵 청원 홈페이지가 민중의 간접적이 화력지원이었다면, 카카오톡과 텔레그램 등 인스턴트 메시지 서비스는 직접적인 지원사격이다. 국회의 박근혜 게이트 청문회를 피해 잠적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찾기 위해 '네티즌 수사대'가 자발적으로 꾸려졌고, 이들의 ‘수사보고’는 손혜원, 박영선 등 야당 의원 의원실에 실시간으로 접수되고 있다. 최순실을 모른다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오리발을 잡아낸 것도 네티즌 수사대와 이들의 제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의원실과 실시간으로 직접 소통을 돕는다는 점에서 메시지 기술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참여와 기여를 독려하고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의 '주식갤러리'로 집결했다. 원래 주식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 개설된 커뮤니티 사이트지만,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우병우 전 수석을 찾기 위한 네티즌 정보공유의 장이 되고 있다.

하지만 메시지 서비스는 일부 국회의원들에게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되기 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의사표명을 주저하던 국회의원들은 1초에 1건씩 날아드는 카톡 메시지에 괴로워해야 했다. 의원들을 초대한 카톡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끊임없이 탄핵 표결을 요구하던 네티즌도 있었다. 어떤 국회의원은 십수 년 동안 써 온 전화번호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국민의 요구를 전달하는 데 메시지 앱이 쉽고 효과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14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에서 시민들의 ‘카톡 테러’에 대한 이완영 새누리당 국정조사특별위원회(국조특위) 간사의 발언은 그중 압권이다.

"제 핸드폰을 지금 뜨거워서 못 사용하겠습니다. 국민들께 제가 전해 올립니다. 그동안 많은 고견을 주신 국민께 감사드립니다. 경제 살리라고, 일자리 많이 만들라는 의견 감사합니다. 특히, 문자나 카톡으로 쓴소리 주신 분 저는 더 감사합니다. 자녀나 부모가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그렇게 육두문자를 쓰는지 묻고 싶습니다. 특히, 18원 후원금을 몇백명이 저한테 넣고 영수증을 달라 하고, 또다시 18원을 보내달라는 말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여당 의원께 죄송합니다만, 저는 오늘부터 간사직에서 내려옵니다."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행동이 민주주의의 성숙을 앞당긴다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달라진 것은 방법이요, 속도다. 시민들이 국회를 압박하기 위한 효과적인 기술을 찾아낼수록 민의는 더 빠르고 정확하게 국회로 전달될 것이다.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정조사는 페이스북의 라이브 방송으로 송출되고, 인스타그램에선 한 장짜리 카드뉴스로 만들어지는 중이다. 일상의 기술이 시민들의 정치 참여의 도구가 되는 순간, 우리는 밀실에서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민의를 두려워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IT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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