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등 후보자 없어 선거 무산
총학 못 꾸려 비대위 운영하기도
투표율 미달로 연장투표도 흔해
취업준비로 학내문제 무관심
총학 위상 낮아져 학생자치 위기
대학에서 학생들의 대표자가 사라지고 있다. 이미 전국적으로 10곳 넘는 대학에서 총학생회장 선거 자체가 무산됐거나 당선 무효 등으로 총학 대신 비상대책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는 당선된 총학생회장이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라 열흘 만에 직무가 정지되는 등 학생 자치가 위기를 맞고 있다.
13일 각 대학에 따르면 지난 11월 총학 선거가 예정됐던 연세대는 후보자가 한 명도 등록하지 않아 학생회를 꾸리지 못했다. 후보자가 없어 선거가 무산된 건 이 학교 총학이 생긴 1961년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다. 숙명여대도 후보자가 나오지 않아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단일후보로 나선 후보가 선거관리규정을 어겨 자격을 박탈당했고, 올해 3월 실시한 보궐선거에서도 후보로 등록한 학생이 없어 1년 내내 비대위가 총학 역할을 수행했다.
한국외국어대는 같은 이유로 2013년 이후 차기 학생회 선거가 11월에 완료된 적이 없다. 늘 이듬해 4월 실시된 보궐선거를 통해 새로운 총학이 출범했으나 올해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비대위 체제로 운영돼 왔다. 서울시립대와 서울여대 역시 총학생회장 입후보자가 전무했다. 이들 대학 모두 내년 3~4월 치러질 보궐선거까지 현 학생회가 임기를 연장하거나 비대위가 임시로 업무를 대행해야 한다.
총학의 쇠락은 지난해 역사 국정교과서 반대를 비롯해 최근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각종 시국선언이 잇따르는 등 대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동에 나선 모습과 대비된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학내에서는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총학에 대한 무관심은 학생 자치기구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생들은 취업이 대학생활의 최우선 과제가 된 현실에서, 학생 복지 문제 등을 해결하는 통로 역할보다는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구심점에 치우친 총학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연세대 재학생 고모(25)씨는 “저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를 돌보기도 힘들다”며 “학내 구성원들이 총학에 의존하지 않는 탓에 학생회장을 해도 얻는 게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재학생 유모(21)씨도 “몇 년 전 총학생회가 운동권 단체 지지를 선언한 뒤 학생들의 반응이 급랭했다”며 “차라리 단과대 회장단으로 이뤄진 비대위가 학생들 의견을 더 잘 수렴한다는 여론이 많다”고 전했다.
설령 후보자가 나오더라도 학생들의 무관심으로 투표율은 저조하다. 서울대는 지난해를 제외하고 최근 13년 간 매해 투표율 미달로 연장투표, 혹은 재선거를 치렀다. 지난달 14~17일 실시된 선거 투표율 역시 44.75%에 불과해 연장투표에 들어 갔고 51.1%의 투표율로 기준인 50%를 가까스로 넘겼다. 동국대도 총학생회장 투표율이 42.3%에 그쳐 개표조차 못하고 투표함을 덮었다.
반면 평생교육단과대 설립과 비선실세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의 입학ㆍ학사 부정 논란이 불거져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 높은 관심을 보인 이화여대의 올해 총학생회장 선거는 어느 해보다 뜨겁게 진행됐다. 투표율은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59.6%를 기록, 연장투표 없이 마무리됐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년 전만 해도 총학생회장은 구속을 전제로 맡을 정도로 용기가 필요했고 안팎에서 인정을 받았지만, 취업이 지상과제가 되면서 그 위상이 축소됐다”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이어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 집회 등으로 학생사회도 개인의 삶이 결국 조직과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연결된다는 점을 피부로 느낀 만큼 학생 자치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