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한 인터넷 언론매체 기자가 작성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관련 기사가 많이 회자됐다. 인터뷰를 시도하는 기자가 LG폰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갤럭시면 얘기할 텐데”라며 승용차 트렁크에서 갤럭시폰을 꺼내 선물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뷰는 없었고 그게 전부였지만, 대중의 반응은 컸다.
이 부회장의 갤럭시 애착 일화는 또 있다. H그룹 빈소에서 마주친 한 기자가 아이폰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왜 애플을 써요?”라고 물었다거나, 폭발 사고가 있은 후 갤럭시노트7을 쥐고 출근을 하며 사옥 로비에서 대기하던 한 취재기자를 보며 “여기만 아이폰이네요”라는 한 마디를 던지고 지나갔다거나. 역시 그때마다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게 지금까지 우리가 ‘이재용’이라는 개인에 대해 알고 있는 거의 전부에 가깝다. ‘카더라’는 전언 외에 우리가 그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너무 제한적이다. 지난해 6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진원지로 삼성서울병원이 지목되자 “책임을 통감한다”는 대국민 사과에 나선 모습 정도였다. 대중은 그의 갤럭시 사랑보다 알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지만, 답을 들을 수 있는 뾰족한 기회는 없었다. 가십거리에 불과한 짤막한 일화에 큰 관심을 보인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난 주 재벌 총수들이 총출동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진실을 파헤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총수들은 사전에 준비된 답변을 되뇔 것이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는 동문서답으로 피할 것이었다. 사내 법무팀을 통해 그렇게 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나는 그보다는 ‘유례없음’에 주목했다. 기자들조차 한두 다리 건너 전해들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맨 얼굴이 궁금했다. 상당 부분 연출된 것이라고는 해도, TV 화면을 통해 이 부회장을 비롯한 총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볼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었다. 화법이 이렇구나. 이런 표정과 제스처를 취하는 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흡사 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을 아주 조금이나마 덜어낸 느낌이었다.
그들에게 그날 하루는 어땠을까. AFP는 “대중에 노출을 꺼리던 총수들이 가차없이 들볶였다”고 했고, AP는 “삼성 후계자에겐 최악의 날”이었다고 보도했다. 맞는 말이지만, 뒤집어 보면 눈 질끈 감고 질타를 견디면 되는 하루였을 수도 있다. 하루만 잘 버티면 다시 장막 뒤로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신 되풀이했을 수 있다.
그들이 대기업의 지분을 보유한 단순한 오너이기만 하다면 장막 뒤에 숨는 걸 뭐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들은 오너인 동시에 경영자이기를 선택한 이들이다. 경영자라면 직원들, 또 사회와의 소통이 기본이다. 그 기업에 몸 담고 있는 임직원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경제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는 국민들 또한 그들이 어떤 능력을 갖췄는지, 어떤 비전을 그리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본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오너경영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밀실 안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나라의 경영을 맡은 대통령만 소통의 부재가 문제는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삥’을 뜯긴 것보다 훨씬 많은 지원을 받아가며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건 엄연한 팩트다. 위기 때마다 ‘애국심 마케팅’을 펼치는 것은 그들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일 거다.
1988년 초선 의원이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 비리 청문회에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질문에 앞서 이런 말을 했다. “본 의원이 증인과 대등한 관계에서 질문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사회적 영향력에 있어서 10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애를 느끼면서 이 질문을 드립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들은 청문회에서나 가까스로 볼 수 있는 이들이다. 이젠 다른 곳에서도 그들을 보고 싶다.
이영태 경제부장 yt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