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기회 주고자 설문조사” 압박
노조 “직원들 겁박하나” 반발
“직원들도 양심의 자유가 있는 것 아닙니까?”
13일 오전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광주시교통문화연수원 직원 A씨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 있었다. 전날 정용식 원장이 자신의 부도덕한 비위 행위를 막아달라고 광주시에 진정서를 낸 직원들을 색출하겠다며 설문지를 돌린 사실을 얘기한 대목에선 말이 멎기도 했다. “정말 기가 막혀 말도 안 나옵니다.” 잠시 후 말문을 이어가던 그는 “알량한 지위로 갑질을 하는 정 원장이 되레 측은하게 여겨질 정도”라고 말했다.
요즘 광주시 출연기관인 교통문화연수원에서 근무하는 상당수 직원들의 표정은 어둡다 못해 침울하다. 정 원장의 비위 의혹을 둘러싼 노조와 정 원장간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정 원장이 광주시와 언론 등에 진정서를 보내고 제보한 내부고발자를 찾겠다며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지난 12일 오후 전체 직원 회의에서 직원들에게 느닷없이 설문지 한 장씩을 돌렸다. 설문지엔 ‘최근 총무과 내부 문서의 무단 복제 및 외부 유출, 광주시 감사위원회ㆍ 언론사ㆍ경찰청 등 투서, 언론사 인터뷰 및 응답 등에 직접 관여하거나 그 과정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적혀 있고, 이에 객관식으로 답변하도록 돼 있다. 또 ‘(이번 일에)관여된 사실이 있다면 그 과정과 내용을 설명해달라’는 문항의 경우 ‘관여한 사실을 밝힐 수 없다’는 항목을 제시하면서 밝힐 수 없는 사유까지 쓰도록 돼 있다.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도 알고 있지만 사실을 밝힐 수 없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적도록 돼 있다.
게다가 설문지엔 ‘금번 철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조치를 통해 조직 혁신의 계기로 삼고자 한다’, ‘관련자에게 자성의 기회를 드리고자 설문조사를 한다’, ‘답변내용은 밀봉해 원장에게 직접 전달 바란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정 원장은 또 노조 위원장에게 이메일을 보내 진정서 제출과 언론사 제보, 내부 문서 유출 등과 관련해 노조가 이를 주도했는지 여부 등 5개 문항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지난 8일 정 원장은 연수원 비위 의혹 등을 취재하기 위해 연수원을 방문한 기자들에게 취재 협조를 한 모 과장을 직위해제하고 문서 접근권까지 제한해 보복 논란을 낳았다. 특히 정 원장은 내부 자료 유출 문제를 거론하며 사무실에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노조 관계자는 “이번 진정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정 원장이 자숙하기는커녕 되레 내부고발자를 찾겠다며 직원들을 겁박하며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다”며 “정 원장 말대로 이렇게 하는 게 조직을 혁신하는 일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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