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버지가 아들에게 만화책을 보라 그러겠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쌓아둔 만화를 읽으면서 피상적인 수퍼히어로물의 영웅들보다 탐욕과 분노 같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스크루지 맥덕’에게 반했죠.”
미국 만화가 제프 키니는 13일 서울 정동 산다미아노 북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윔피 키드’ 시리즈 기획한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2007년 시작돼 지금까지 11권이 발간된 ‘윔피 키드’는 형에게 구박받고 동생에게 놀림 당하는 소심한 중학생 그레그가 벌이는 엉뚱한 일을 그림일기식으로 풀어낸 어린이ㆍ청소년 소설. ‘윔피’(whimpy)는 ‘나약한’ ‘겁이 많은’이라는 뜻이다. 스크루지 맥덕은 도널드 덕의 삼촌으로 ‘스크루지’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욕심쟁이 알부자 캐릭터다.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1억8,000만부라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리즈 가운데 일부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키니는 “전세계 52개 언어로 번역됐는데 그 중에는 지금 죽은 언어인 라틴어도 들어 있어서 그 덕에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만났다”며 “문화가 다른 여러 지역에 그처럼 재미있게 읽혔다는 것이 너무 흥분되고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키니는 미국 경제 월간지 포브스가 꼽은 올해 고소득 작가 순위에서 스릴러작가 제임스 패터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인세 수입만 매년 200억원대 이상이다. 키니의 방한은 월드 투어 가운데 하나로 11권 ‘무모한 도전일기’ 번역 출간에 맞춘 것이다.
그런 키니라 해도 시작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만화에 푹 빠져 지낸 덕에 원래 신문이나 잡지에 캐리커처나 만평을 그리는 사람이 되려 했다. 그러나 ‘그림체가 너무 아이 같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3, 4년 온갖 거절 편지란 편지는 다 받아본 뒤 ‘그렇다면 차라리 아이 같은 그림체를 살려보자’고 결심했다. 그 뒤 4년 동안 스케치북에다 아이 시절 말하고, 듣고, 상상해왔던 우스꽝스럽고 무섭고 좋았고 기분 나빴던 모든 일들을 글과 그림으로 다 표현해봤다. 이를 토대로 일종의 스크립트를 만들었고, 그걸 가지고 ‘윔피 키드 1권’을 편집해 출판사 문을 두들겼다. 바로 이 책이 ‘대박’이 난 것이다. 키니는 “너무 오랫동안 아이디어로만 존재했던 것들이 책으로 나와 사랑 받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
작가로 성공한 뒤의 행보도 남다르다. 자신이 살던 보스턴 남부 플레이빌에 서점을 하나 열었다. 어린이책, 만화책을 판매하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아 결국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구심점으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담은 가게였다. 그래서 1층은 서점, 2층은 스튜디오로 꾸몄다. 그는 “서점은 내 사명감”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 이기적인 목적이 하나 더 있다. 스튜디오에 내가 보고 싶은 작가들을 초청해 아이들과 만남을 주선했을 때 아이들이 뛸 듯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왜 ‘윔피 키드’ 시리즈를 이어가야 하는지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다.”
키니는 방한 중 1일 교사 체험에 이어 14일에는 조희연 서울교육감과 대담도 한다. 한국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학력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는데, 어릴 때는 노력해야 하는 부분 못지 않게 즐거워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 만큼 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는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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