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국 문학에 새로운 피를 수혈할 2017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가 완료됐다. 올해 응모자는 시 625명, 소설 290명, 희곡 85명, 동화 161명, 동시 250명 등 총 1,411명이다.
올 신춘문예 투고작을 휩쓴 단어는 가난이다. 성인문학부터 아동문학까지 전 장르에 걸쳐 어둡고 희망 없는 시대를 주목하고 묘사하는 작업이 활발했다. 소설 부문을 심사한 한 소설가는 “돈 없는 청년이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동창 집에 텐트 쳐놓고 같이 사는 등 가난한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굉장히 많았다”면서 “요즘 세대의 현실 인식 중 가난이 가장 압도적인 화두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난을 토로하고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이야기가 없었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꼽혔다. 다른 심사위원은 “가난을 소재로 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일상을 어떻게 뒤흔들어놨는지 사유하고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이 ‘우리 모두 가난해’에서 그치고 말아 아쉬웠다”며 “상상력도 예년에 비해 줄어들어 기성 작가의 작품을 읽는 듯 정체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평했다.
시 부문에서는 서정시가 대세인 가운데 여성혐오 등 사회적인 이슈가 투영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한 심사위원은 “한창 포스트모던한 시들이 많이 나왔는데 어느새 그것도 한 가지 유형이 돼버린 것 같다”면서 “전근대적인 시와 포스트모던한 시 중 어디에도 포섭되지 않은 수준작들을 몇몇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심사위원은 “소위 메갈리아라 불리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언어를 시에 그대로 차용한 작품들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며 “최근의 여성혐오 화두에 시인 지망생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했다.
희곡 부문에서는 가족을 소재로 가족 구성원의 부재, 마찰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 많았다. 한 심사위원은 “습작생들의 연령이 낮아 조직 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주요 소재가 되는 것 같다”면서 “삶에 대한 고민을 대단히 부조리적으로 풀어낸 작품도 많았지만, 그걸 극으로 형상화시키는 기술이 부족해 ‘글쟁이가 쓴 희곡’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평했다. 다른 심사위원은 “노인병원, 요양병원, 고시원 등 사회적 메시지가 대부분 가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살아 있는 캐릭터, 재기발랄하고 거친 문제제기를 하는 작품을 보기 힘들어 아쉬웠다”고 말했다.
동화, 동시 등 아동문학에서는 전반적으로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책이 잘 팔리지 않고 어린이의 삶이 이토록 척박한 시대에 작가의 소명을 갖고 진지하게 작품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며 “무엇을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동화 부문 심사위원은 “시대가 어둡고 분노가 흐르고 있기 때문인지 어린이의 아픔을 다루는 이야기가 많이 투고됐다”며 “작가의 문제의식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작품들이 있어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어린이의 삶에 더 건강한 미래를 놓아주고 싶다는 의지가 돋보이는 투고작들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동시 부문에서는 전통적 소재인 학교, 학원, 친구 외에 촛불, 지진 등 사회 문제와 연관된 소재들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한 심사위원은 “아이들의 세계가 어른들의 세계와 멀지 않으며 오히려 매우 밀접한 것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았다”면서 “우리가 살면서 겪는 여러 문제들이 근심, 불안 등 아이들의 시선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말했다. 부문별 당선자는 12월 중순경 개별 통보한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