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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방귀를 트는 조건

입력
2016.12.1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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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대상으로 강연하는 게 가장 어렵냐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묻는 사람이 기대하는 답은 보통 ‘어린아이’다. 흔히 아이들은 집중력이 약하기 때문에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자발성이다. 이것은 단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은 당연히 강연에 집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졸거나 딴짓하면서 강연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강연장의 아이들은 대부분 엄마에게 억지로 끌려왔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강연하는 게 몹시 어렵다.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 억지로 끌려온 아이들을 강연에 집중시키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주제가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이든 뭐든 상관없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다.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똥과 방귀 그리고 엉덩이다. 이 세 단어를 들은 아이들은 자지러지면서 강연에 집중한다. 이유는 모른다.

아이들을 위한 강연장에는 아이들만큼이나 많은 어른이 있게 마련이다. 어른들은 그런 단어 싫어한다. 그래서 어른들의 눈치까지 보면서 적당히 해야 한다. 세 단어 가운데 어른들이 가장 쉽게 용인하는 단어는 방귀다.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인 것이다. 아마 자신도 매일 뀌면서 대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게 바로 방귀라서 그런 것 같다.

우리에게 방귀는 정말로 익숙하다. 사람은 보통 하루에 14~25번 정도 방귀를 뀐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방귀를 두세 번은 뀔 것이며 이 글을 읽는 동안 방귀를 한 번 정도 뀐 독자들도 꽤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루에 뀌는 방귀 양은 600~1,500㎖ 정도다. 그러니까 작은 생수병에서 커다란 콜라 페트병만큼이나 되는 것이다.

그렇다. 방귀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단지 미안할 뿐이다. 미안한 이유는 빵, 뿌우우웅, 뽀오오옹, 프스스스 같은 소리가 아니다.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냄새 때문이다. 방귀에는 (요즘은 학교에서 메테인이라고 가르치는) 메탄, 질소, 이산화탄소, 수소처럼 냄새가 없는 기체뿐만 아니라 암모니아, 황화수소, 스카톨, 인돌처럼 고약한 냄새가 나는 기체가 섞여 있다. 고단백 음식 섭취량이 많을수록 냄새가 독해진다. 그런데 정작 지구에 안 좋은 기체는 별 냄새가 없는 메탄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가스라서 방귀를 뀔 때마다 지구를 데우는 역할을 한다.

방귀를 터야만 진정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연스럽게 방귀를 트고 싶다면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면 된다. 단풍철에 설악산에 줄지어 등반하다 보면 앞사람의 엉덩이에서 자신의 얼굴로 분사되는 방귀 냄새를 맡게 된다. 앞사람에게 불평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방귀를 뀌면서 올라가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만 올라가면 방귀가 잦아지는 이유가 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기압이 낮아지는 현상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질소로 충전된 과자 봉지를 높은 산에 가져가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다. 봉지 내부에 있는 질소 분자 수는 일정하지만 외부 기압이 낮아져서 바깥으로 미는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부풀어 오르는 것은 과자 봉지만이 아니다. 우리의 대장(大腸)도 그렇게 된다. 대기압이 평지보다 낮기 때문에 대장에서 같은 개수의 가스 분자가 발생하더라도 그 부피는 훨씬 커진다. 대장이 보관할 수 있는 기체의 양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주 방귀가 나오게 된다.

반대의 경우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산 정상에서 반쯤 마시고 마개를 꼭 막은 생수병을 배낭에 넣어서 평지까지 내려오면 생수병이 수축하여 찌그러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지의 기압이 페트병 속의 기압보다 높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기압과 온도 그리고 기체 부피의 관계를 보일-샤를의 법칙이라고 한다. 보일-샤를의 법칙에 따르면 기체의 부피는 온도에 비례하고 압력에 반비례하여 증가한다. 앗! 산에 올라가면 기압이 줄어서 기체 부피가 늘어나지만, 온도가 내려가서 기체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는 것 아닐까. 아니다. 우리는 기온이 아무리 떨어져도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항온동물이다. 따라서 높은 산에 가면 방귀가 늘어난다.

연인 사이가 아니더라도 등산하면서 앞사람의 방귀에 지청구를 늘어놓는 사람은 없다. 높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왔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은 불편을 참는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심지어 유쾌하게 받아주면서 즐긴다.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이는 사람들도 그렇다. 옴짝달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모이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시위대로 인해 길이 막혀 몇 정거장 미리 버스에서 내리게 되더라도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유모차를 위해 수백 명이 틈을 비집어 길을 낸다. 구호를 외치는 뒷사람의 촛불에 내 머리카락이 그슬려도 괜찮다. 수만 명이 동시에 통화를 하는지 통신장애로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되어도 주인이나 고객이나 서로 탓하지 않고 웃고 만다. 맥줏집에 맥주가 떨어지면 한두 블록쯤 더 걸어도 된다. 용변이 급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화장실까지 동행하여 알려준다.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도 즐겁다. 촛불이 승리하는 이유는 자발성이다. 그게 민주주의다.

강연하기 제일 힘든 대상은 공무원과 교사들이다. 교육 연수를 위해 억지로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방귀 이야기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법이란 딱 한 가지. 일찍 끝내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빨리 나오는 게 좋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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