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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그리고 2016년의 함성… 제주는 잠들지 않는다

입력
2016.12.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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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제주시청 앞에 모인 제주시민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제주시청 앞에 모인 제주시민들.

1947년 3월 1일, 제주 북국민학교 주변으로 3만의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제주 인구가 30여만 명 이었음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군중들이 든 천 조각에는 ‘모스크바 3상회의 절대지지’ 또는 ‘반대’, ‘미소 공동위원회 재개 촉구’, ‘3.1정신으로 통일독립 전취’ 등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꼭 그런 주장을 위해서 군중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해방 이후, 일본으로 나갔던 도민들이 미군정책에 의해 그간 열심히 벌어둔 재산을 일본에 그대로 두고 거의 빈 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렇게 제주로 다시 돌아온 귀향인이 6만여 명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밀수품이 횡행했고, 이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서청의 모리행위가 극에 달했다. 게다가 콜레라가 돌고 흉년이 찾아왔는데 이에 미군정이 실시한 미곡정책은 실패해서 도민들의 불만은 터지기 일보 직전인 상태였다. 3ㆍ1절 28주년 기념 제주도대회는 도민들의 이런 불만이 극에 달하는 시점에서 열리고 있었다.

대회를 마친 군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서쪽으로 향하는 군중들은 관덕정을 끼고 돌아 서문통으로 빠져나갔고, 동쪽으로 향하는 군중들은 북신작로를 따라 산지천과 만나는 동문통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오현중에서 집회를 마친 인원이 읍내의 동쪽을 우회해서 북신작로로 들어왔다. 이들이 현재 일도1동 사무소 자리의 감찰청장 관사에 다다를 즈음, 기관총을 장전한 쓰리쿼터를 앞세운 미군과 대치하게 된다. 행진대열이 앞으로 전진하면 발포하겠다는 일촉즉발의 순간에서 한 시간 정도를 대치한 시위군중들은 자진해산하며 행진을 마쳤다. 우리가 잘 아는 4ㆍ3의 직접원인인 관덕정 앞에서의 기마경찰에 의한 아이의 쓰러짐과 발포는 이 이후의 일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지역은 사회경제적으로 중심이 되는 자리라는 의미이다. 해방직후의 제주는 관덕정과 북국민학교 그리고 도립병원 등등이 위치한 현재의 칠성통 지역이 그런 자리였다. 70여년이 지난 지금의 칠성통은 경제적으로 쇠락하고 사회적 의미도 많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무겁게 역사와 사람들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제주관아와 관덕정
제주관아와 관덕정
제주북초등학교.
제주북초등학교.
산지천.
산지천.

그 날의 흔적을 따라 제주북초등학교와 관덕정을 둘러보고 북신작로를 따라 산지천까지 걸었다. 세월에 따라 풍경도 변하는지라, 칠성통은 다시 한 번 번화의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제주에 입도하여 5년을 살았던 동네이기도 해서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모습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차 없는 거리 안은 다시 활기가 돌고 있었고 산지천 물길은 인간의 손에 수없이 휘둘렸어도 투명하고 그윽한 물색은 여전했다. 그 사이사이에 숨은 듯 자리한 시간과 역사의 흔적들이다. 칠성통은 단단한 시간 위에 묵직한 더께를 얹은 채, 수없이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체취를 은은히 품고 있었다.

제주시청 앞의 촛불시위.
제주시청 앞의 촛불시위.

이제 사람들은 제주시청으로 모여든다. 교통의 흐름에서 제주시청은 중심이 되었고, 사람들은 친구나 연인을 만나러, 또는 가벼이 술 한잔 하기 위해 제주시청 앞 번화가로 모인다. 그러면서, 이 곳은 제주의 경제와 사회적 의미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올바름을 잃고 상식을 망각해버린 사회에 대한 분노를 저마다의 마음속에서 키우는 중이다. 분노를 표하고 다시 만들어야 할 세상의 희망을 위해 제주의 사람들은 제주시청 앞에서 촛불을 든다. 이미 1만 이상의 제주의 사람들이 시청앞을 에워싸며 촛불을 들고 저마다의 마음을 더했다. 그리고, 촛불은 계속 이어진다. 1947년 3월 1일 북국민학교와 관덕정에서 2016년 12월 제주시청으로, 남도는 여전히 잠들지 않는다.

전영웅

*1947년 3ㆍ1 제주도대회 내용 출처 : ‘4ㆍ3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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