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추진 동력 상실” 관측 깨고
당국, 금융개혁 재시동 신호
금융노조 “소송 등 강경대응”
야당 반대에 향후 정국 뇌관으로
시중은행들이 기습적으로 한 날에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국정 동력이 곤두박질치면서 정부가 주도하는 성과연봉제의 연내 도입이 물 건너갔다는 관측을 뒤집은 것이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 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체제가 본격 출범하자 금융당국이 은행을 압박해 금융개혁의 시동을 다시 걸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융노조가 소송을 비롯한 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고, 야당 역시 무리한 강행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어 향후 정국에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 KB국민 KEB하나 우리 NH농협 한국씨티 SC제일 수협 등 8개 시중은행은 이날 일제히 긴급 이사회를 열고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 또는 논의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단 오늘은 도입만 결정했고, 시기와 구체적인 방식 등은 노조와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에 성과연봉제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은 지난 3월부터다. 금융위가 “금융공기업에 대해서는 공공기관 중에서도 가장 강도 높은 수준의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금융공기업 사측은 노사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을 강행했다. 금융당국이 다음 타깃으로 삼은 것이 시중은행. 은행연합회는 성과연봉 차등 폭이 금융공기업보다 더 큰 ‘시중은행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내놨고, 금융노조가 지난 9월23일 총파업에 나서는 등 갈등이 증폭됐다.
그러나 모든 현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최순실 게이트’ 이후 논란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박근혜 정부의 중점 추진사업이던 성과연봉제 도입 역시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우세했다. 실제 금융노조는 지난달 18일 예고했던 2차 총파업을 무기한 연기하기도 했다.
이날 시중은행들의 기습 의결을 두고 금융당국은 “은행장들의 자율적 합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선 금융당국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된 결과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국회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며 경제사령탑 혼선도 정리가 된 만큼 다시 금융 분야의 개혁과제들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겠다는 첫 신호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금융권의 고액 연봉 등에 부정적인 여론을 감안하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더라도 시민사회의 반발로까지는 이어지지 않겠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거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난관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금융노조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날 성명에서 “지난 9일 금융위원회로부터 이날 이사회 의결을 무조건 강행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고 주장하며 “만일 강행하면 관련 책임자는 박근혜 정권의 부역자로 규정하고 응징하겠다”고 밝혔다. 소송 결과도 변수다. 앞서 성과연봉제 도입이 의결된 금융공기업들은 노조 합의 없는 이사회 의결이 무효라며 지난 10월부터 줄줄이 본안 소송과 가처분 소송을 낸 바 있다. 만약 가처분 소송 등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인용 결정이 나온다면 성과연봉제 도입은 한동안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야당의 반대도 큰 부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대변인 논평을 통해 “성과연봉제, 저성과자 해고 등 ‘1% 정책’도 재논의 돼야 한다”고 밝혔다. 시중은행 고위 인사는 “‘박근혜표 정책’이라는 꼬리가 붙으면서 정치적 쟁점으로 번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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