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비밀리에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미 의회가 정면 충돌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민주당 지도부와 협력해 초당(超黨)적인 진상 규명을 요구했는데, 미 의회가 러시아 문제만큼은 단일대오를 형성해 ‘친(親) 러’ 성향의 트럼프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ㆍ민주당 상원의원 4명은 11일(현지시간) 공동성명에서 “러시아의 선거개입에 대한 최근 보도들은 미국을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은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사이버공격을 방어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공동성명에는 공화당의 주류 정치인 존 매케인(애리조나) 상원 군사위원장과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의원, 민주당의 차기 상원 원내대표인 척 슈머(뉴욕) 의원과, 잭 리드(로드아일랜드) 상원 군사위원이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은 앞서 대선 과정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불리한 이메일이 해킹돼 폭로되자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며 친러 성향의 트럼프를 비판했다. 공화당은 트럼프의 대선 당선을 위해 대응을 자제했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이 실제 러시아의 대선 개입을 인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분위기가 반전됐다. 이날 공동성명을 주도한 매케인과 그레이엄 의원은 애초 트럼프와 껄끄러운 관계였다는 점을 감안 하더라도, 공화당 랜드 폴(켄터키), 제임스 랭크포드(오클라호마) 상원의원 등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초당적 진상규명을 지지한다”고 밝히며 의회 전체 대 트럼프 구도로 전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의회가 가장 문제삼고 있는 지점은 트럼프의 친러 성향이다. 공화당은 전통적으로 반러 성향에다가 국가 안보를 중요시하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줄곧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칭찬했고, 러시아의 대선 개입 의혹도 “CIA는 사담 후세인이 대량파괴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거짓말) 했던 바로 그 사람들”이라고 조롱하는 등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다. 폴리티코는 “양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러시아의 미 선거개입에 공동 대응하며 트럼프의 친러 노선과 정면으로 맞붙을 준비를 끝마친 것처럼 보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런 가운데 의회가 국무장관 인선을 두고 트럼프 길들이기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트럼프가 국무장관으로 유력 검토하는 석유회사 엑손모빌의 렉스 틸러슨 최고경영자는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와 여러 합작사업을 벌였고, 2012년 러시아 정부훈장을 받기도 한 친러파다. 트럼프는 “틸러슨이 국무장관에 매우 근접해 있다”고 밝히며 국무장관 발탁을 기정사실화 했지만, 공화당 매케인과 그레이엄, 마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 모두 부적절한 인사라는 입장이다. 현재 상원에서는 민주당 의원 전원과 공화당 의원 3명만 인준을 반대해도 틸러슨 임명은 무산될 수 있어, 이들이 실력 행사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지용 기자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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