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과 강동원 김우빈이 출연한다. 40대와 30대, 20대를 각각 대표하는 충무로 A급 배우들을 앞세웠으니 촬영 전부터 화제였다. 화려한 남자 출연진에 진경과 엄지원이 빛을 더하고 흥행작 ‘감시자들’의 조의석 감독이 힘을 보탰다. 주연급 감초 배우 오달수까지 합류했으니 진용만으로는 올해 개봉한 어느 한국영화 부럽지 않다. 출연진의 무게감을 뒷받침하려는 듯 제작비는 100억원. 필리핀 로케이션까지 곁들였다. 영화 ‘마스터’의 위용은 휘황하다.
영화는 조 단위 사기범 진현필(이병헌)과 그를 쫓는 엘리트 형사 김재명(강동원),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살아남으려는 비범한 해커 박장군(김우빈), 수컷들의 비릿한 쟁투에서 자기 몫을 챙기려는 김엄마(진경)의 욕망 가득한 머리싸움을 그린다.
최근 충무로의 흥행코드인 신랄한 사회 비판을 기조로 화려한 볼거리를 내밀며 관객 유혹에 나선 ‘마스터’가 1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언론시사회를 열고 베일을 벗었다. 한국일보 영화팀이 ‘마스터’의 첫 인상을 전한다. 21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마스터’ 20자평
※★ 다섯 개 만점(☆는 반 개)
훌륭한 식재료에 훌륭한 요리사, 그런데 맛은…
지난해 11월 개봉한 ‘내부자들’을 자꾸 떠올리게 하며 비교하게 만드는 영화다. 이병헌이 주연을 했고 권력 상층부의 음습한 내부거래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마스터’와 ‘내부자들’은 닮았다. 이야기의 초점과 화술은 다르다. ‘내부자들’은 권력 상층부의 행태를 비추며 하수인들의 아귀다툼과 전복적인 연대를 그리는 반면 ‘마스터’는 권력층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채워가는 사기꾼과 그를 잡으려는 형사의 맞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가장 큰 차이는 인물의 대비다. ‘내부자들’에선 절대 선인이 없다. 세상 모든 이들은 잠재적 악인인데 그 정도가 다르다는 인식이 스크린에 깔려있다. 인물들의 변모가 감정의 진폭을 높고도 깊게 했다. ‘마스터’는 김재명이라는 정의감에 불타는 경찰이 이야기의 한 축을 맡고 또 다른 축은 “사기가 광합성”(박장군의 대사)인 절대 악인 진현필의 몫이다. 진현필과 김재명 사이에 악인도 선인도 아닌 박장군이 있다. 성향이 뚜렷한 인물들이 빚어내는 긴장감과 감정이입도는 당연하게도 낮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반복되는 반전을 통해 서스펜스와 스릴을 제조하려 한다. 하지만 143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에 이야기를 욱여넣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병헌의 능수능란한 연기는 여전히 진경이고, 마닐라 시내에서 펼쳐지는 차량 추격 장면은 그나마 괜찮은 볼거리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익숙한 레시피와 맛에 실망할 수도
이쯤 되면 진수성찬이다. 강동원과 이병헌 김우빈이 메인 디시에, 액션과 스릴러라는 사이드 디시까지 갖춰져 손색없는 만찬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 로케이션과 숨막히는 차량 추격 장면이라는 양념을 추가해 맛깔스런 ‘수라상’이 완성됐다. 그런데 너무도 익숙한 레시피와 맛이 문제다.
영화는 뻔하고도 안전한 공식을 따라간다.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을 내세워 정경유착과 사회지도층의 부정부패를 보여주고, 유능하고 치밀한 지능범죄수사팀장 김재명이 ‘악의 축’을 제거하려는 과정을 부각한다. 박장군을 통해 ‘007’ 시리즈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스파이 놀이’를 이어가지만, 그 뿐이다. 어느 것 하나 신선하지 않다. 출연 배우들도 전작과 오버랩 돼 영화 몰입을 방해한다. 이병헌의 사투리 구사와 무식한 말투는 안상구(‘내부자들’)를 떠올리게 하고, 강동원은 검사를 사칭하며 권력층에 뒤통수를 날렸던 한치원(‘검사외전’)을 보는 듯하다. 김우빈도 뛰어난 두뇌로 금고를 터는 지혁(‘기술자들’)이 아른거린다. 그러다 보니 감동이나 메시지, 긴장감이라는 재미의 3요소를 잡지 못한 느낌이다. 예측 가능한 장면과 결말에 관객과의 ‘밀당’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나마 극을 살린 건 이병헌과 강동원 사이에서 재간둥이 노릇을 충실히 한 김우빈이다. 혼자 웃고 떠들고 거들먹거리고 춤추고, 원맨쇼를 제대로 해냈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미끼’를 물 시간은 줘야
꿈과 욕망은 한 끗 차이다. 노력을 쏟지 않는 꿈은 쉽게 부패해 맹목적인 욕망으로 변질된다. 부패한 곳엔 날파리가 꼬인다. 영화 안에서도 한국 사회는 욕망에 기생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먹이사슬에 의해 움직인다. 그 사슬의 핵심 고리를 끊어내려는 김재명과 수사팀의 집념이 영화의 엔진 역할을 한다.
엔진의 성능이 썩 좋은 편이라 잠시만 한 눈을 팔아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속도가 빠르다. 그 속도감이 영화의 긴장감을 조성하지만, 눈앞에 던져진 미끼와 복선의 의미를 파악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소 산만하고 불친절한 전개로 느껴질 수 있다.
희대의 사기꾼 진현필과 치밀하기로는 진현필 못지않은 형사 김재명이 펼치는 두뇌싸움은 제법 흥미진진하다. 함정과 반전이 도처에서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평면적이다. 제대로 된 기술을 써보지도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힘겨루기만 하다가 경기가 끝나버리는 느낌이다.
캐릭터도 단조롭다. “미친 놈”을 자처하는 김재명의 저돌적인 면모엔 동기가 부족하고, 진현필의 사악함도 다분히 영화적이라 공분을 부를 정도까지는 아니다. 영화가 배우들의 연기력에 상당 부분 빚을 졌다.
밋밋한 판을 흔드는 건 박장군이다. 진현필과 김재명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 미끼가 된다.
결자해지의 결말은 다소 허무맹랑하지만, 그 덕분에 극장 문을 나서는 마음이 가벼워진다. 호불호는 갈릴 듯하지만 오락영화로서 흠이 되진 않는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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