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63일간 노무현 한 번도 안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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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건, 대통령 권한대행 63일간 노무현 한 번도 안 만났다

입력
2016.12.1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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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에 딱 3차례만 간단히 통화

친전 형태 보고… 법적 논란 피해

北 용천역 폭발사고 대처 등

안보 현안에 가장 신경 써

사면권 개정안엔 거부권

필요 땐 대통령 권한 적극 행사

대통령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하면서 2004년 고건 대행체제 사례가 중요한 잣대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고전 전 총리가 2004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국무회의에 입장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2004년 3월 12일, 고건 당시 총리는 탄핵 가결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일 국회 상황을 TV로 지켜보고서야 위기를 느끼고 가장 먼저 ‘헌법학 개론’ 책부터 집어 들었다. 그만큼 아무런 준비 없이 들이닥친 초유의 대통령 직무 정지 사태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 가능성이 높아 준비 기간이 있었던 데다, 고건 권한대행의 전례가 존재한 만큼 당시 보다 충격과 혼란은 덜하다. 권한대행의 법적 역할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학계에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지만, 고건 권한대행 사례는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그는 2013년 출간한 회고록 ‘국정은 소통이더라’에서 당시의 경험을 남겼다. 고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총리께서 2007년 이후로는 언론 인터뷰를 하지 않고 있는데, 회고록을 통해 충분히 얘기를 했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권한대행 동안 대통령 한 번도 안 만나

고 권한대행은 63일 간의 권한대행 기간, 노 전 대통령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노 대통령과 따로 만나 국정에 대해 깊이 논의한다면 법을 어기는 일이 된다. 사적 만남이라도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이 나에게 업무지시를 했다는 오해를 받는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만 고 권한대행은 사면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등 중요 결정을 알리는 차원에서 딱 세 차례만 간단하게 통화했다.

대통령에겐 ‘친전’ 형태로 보고

직무 정지된 대통령에게 업무 보고를 할 수 있느냐는 예민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고 권한대행은 “국정 연속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은 대통령이 계속 파악할 수 있도록 하라”고 교통정리를 했다. 다만 정식 ‘보고’가 아닌 ‘친전(親展)’ 형태로 전달해 법적 논란을 피해 갔다. 당시 박봉흠 청와대 정책실장이 채널을 맡아 국무회의 및 부처 업무보고에 배석해 관저에 머물고 있는 노 대통령에게 국정의 흐름을 전했다.

고 권한대행은 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만 보고 받고 직접 주재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는 상황에서 최대한 몸을 낮추는 행보를 택한 것이다. 청와대를 방문한 것도 딱 한번이었다. 주한 외국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방문한 경우였다.

안보 현안 집중 챙겨

고 대행이 가장 신경을 썼던 분야는 역시 안보였다. “갑작스레 권한대행이 되고 나서 가장 걱정한 것은 우발적으로 남북 간 긴장상황이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가 가장 긴장했던 때도 4월 22일 북한 용천역 폭발사고 때였다. 그날 저녁 8시쯤 용천역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이 확인되지 않아 “밤을 새면서 ‘제발 김정일이 안 죽었으면’하고 바랐다”는 것이다. 이튿날 김 위원장 신변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 후 고 권한대행은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다.

거부권 행사... 강금실 법무장관 해임 검토

대통령 권한 행사에 신중했던 고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특별사면권 행사 시 국회 의견을 구하도록 한 사면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위헌 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적극 행사한 것이다. 또 차관급 정도의 인사만 단행했던 고 권한대행은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 해임을 검토했다는 사실도 회고록에서 밝혔다. 강 장관이 총선을 앞두고“(총선 결과에 따라)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취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발언해 선거 중립 시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강 장관이 한번만 더 그런 언행을 한다면 법무장관 직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이었다”며 국무위원 해임권 행사를 검토했다는 것이다. 최대한 몸을 낮추면서도 경우에 따라 언제든 대통령 권한을 적극 행사할 의지가 있었다는 얘기다.

송용창기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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