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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의 스타트업 독립 “허밍만으로 작곡하는 앱 개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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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맨의 스타트업 독립 “허밍만으로 작곡하는 앱 개발했죠”

입력
2016.12.1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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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C랩서

장비ㆍ인력 지원받으며 ‘험온’ 개발

허밍을 악보로 완성 반주도 입혀줘

빅데이터ㆍ머신러닝 첨단기술 집약

유명 음반사 등 협력 제안 줄이어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험온을 켠 뒤 음을 흥얼거리면(왼쪽) 음표로 찍혀 하나의 악보(오른쪽)가 완성되고 발라드, 록, 오케스트라 등 장르별 화음도 입힐 수 있다. 험온 앱 캡처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험온을 켠 뒤 음을 흥얼거리면(왼쪽) 음표로 찍혀 하나의 악보(오른쪽)가 완성되고 발라드, 록, 오케스트라 등 장르별 화음도 입힐 수 있다. 험온 앱 캡처

갑자기 떠오른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스마트폰을 꺼내 든다. 화면에 대고 음을 들려주기만 했는데 음표가 그려지고 하나의 악보가 완성된다. 악기도 종이도, 펜도 없지만 어쩌면 공기 중에 흩어져버렸을 악상이 ‘나만의 명곡’으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신생 혁신 기업(스타트업) 쿨잼은 콧소리로 음을 흥얼대는 허밍(humming)만으로 누구나 작곡가가 될 수 있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험온’을 개발했다. 멜로디를 악보로 옮기는 데에서 나아가 발라드, 록, 오케스트라 등 각종 장르별 화음까지 입힐 수 있다. 쿨잼에는 최병익 대표를 포함해 총 7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5명은 ‘삼성전자 출신’이라는 공통 수식어도 갖고 있다.

8일 서울 삼성동 쿨잼 사무실에서 만난 최 대표는 좁은 방 안에서 화려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청바지 차림에 헤드폰을 목에 걸친 최 대표의 원래 직장은 삼성전자의 생활가전사업부 선행개발팀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TV에서 들리는 소리를 피아노로 바로 따라 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그는 음악만큼 수학과 물리가 좋아 공학도의 길을 택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로는 세탁기, 냉장고 등에 들어가는 각종 감지기(센서)를 개발하는 업무를 했다. 최 대표는 “센서 개발 일을 하면서도 항상 음악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다”며 “공학과 음악을 결합할 수 있는 분야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동시에 하고 싶다는 건 누구나 그리는 이상이다. 최 대표의 꿈을 실현시켜 준 곳은 다름아닌 일터였다. 삼성전자가 창의적 조직 문화를 확산시키고 임직원들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운영 중인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에 지난해 5월 최 대표의 아이디어가 발탁되면서 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C랩 소속으로 이동하게 되면 1년 동안 업무에서 벗어나 신사업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다. 함께 할 동료도 삼성전자 직원들 중에서 직접 뽑으면 된다. 각종 장비와 연구 환경을 지원받는 것은 덤이다. 그렇게 지난 5월 시험용 버전 앱 험온이 출시됐다. 최 대표와 그를 따른 직원 4명은 지난 10월 대기업 삼성전자를 뒤로 하고 쿨잼이란 법인으로 독립했다.

최 대표는 1년 동안 보장되는 안정적인 시험 기간을 사내 벤처 제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모아 둔 돈을 까먹으면서 창업에 도전하지만 장소와 개발 예산까지 제공받고 회사 월급도 그대로 받는 건 엄청난 도움”이라며 “스타트업에서 가장 힘든 우수한 인재를 모으는 일도 삼성 직원들 중에서 빠르게 발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C랩 덕에 과감히 창업에 도전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마케팅 전략 수립, 앱 디자인, 운영체제(OS) 개발 등 삼성 내 전문가들은 사람의 음성을 음표로 바꾸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간단하게 보일 수도 있는 작업이지만 각종 첨단 기술이 집약됐다. 음의 높낮이나 음을 끄는 박자 등 소리 신호를 악보 정보로 변환하는 음악정보복원(MIRㆍ Music Information Retrieval) 기술을 기반으로 사람마다 모두 다른 주파수와 음색으로 ‘도’ 음을 내도 같은 도로 인식할 수 있는 빅데이터 분석, 기계학습(머신러닝) 등의 기술도 더해졌다. 최 대표는 “험온의 알고리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명령들로 구성된 일련의 절차)은 기존 음악가들의 멜로디와 악기, 화성의 조합을 계속해서 배우고 있다”며 “단음의 악보를 그리는 데 그치지 않고 어울릴만한 반주를 붙여주는 서비스가 가능한 이유”라고 말했다. 험온에 음을 녹음하면 9개 악기가 어울리는 반주를 추가, 록 R&B 발라드 등 5개 장르의 음악으로 바꿔준다.

사진이나 영상, 글로 소통하는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음악을 콘텐츠로 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최 대표가 그리는 험온의 미래다. 서로 음악을 공유하고 공동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저작권 수익도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다. 험온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 본 국내외 유명 음반사, 음악 유통사 등의 협력 제안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내년 봄에는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음악 축제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쇼케이스 무대에도 올라 험온을 소개할 수 있게 됐다. 최 대표는 “뮤지션과 협업하면 그 사람의 음악 특징을 머신러닝으로 학습, 그 뮤지션이 편곡한 것 같은 서비스도 가능하다”며 “유튜브 영상 광고 수익의 40%를 음악이 가져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험온의 향후 수익성 가치는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허밍만으로 악보를 그려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험온’을 개발한 최병익 쿨잼 대표가 8일 서울 삼성동 쿨잼 본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활짝 웃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허밍만으로 악보를 그려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 ‘험온’을 개발한 최병익 쿨잼 대표가 8일 서울 삼성동 쿨잼 본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활짝 웃고 있다. 고영권 기자 young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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