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한국 경제를 둘러싼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는 15일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동결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1,300조원을 돌파한 가계부채 급증세에 대한 우려가 가시지 않았고 대외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13∼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0.50%인 정책금리를 1년 만에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세계 금융시장에서 다시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대내외 불안 요인을 감안해 이번에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지만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정국 혼란이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한은이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7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에서 2.4%로 낮추고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뿐 아니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주문했다.
해외 투자은행(IB)들도 내년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현재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JP모건 등 주요 10개 IB의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4%로 10월보다 0.1% 포인트 하락했다. IB들은 한국은 내년에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건설경기 둔화, 정치 불안정 등의 요인으로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구나 올해 4분기는 생산, 소비의 위축으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앞으로 경제성장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국내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가로 낮출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와 외국인 투자 자금의 움직임이 큰 변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감세와 투자 확대로 인한 물가상승세 확대 등으로 연준이 내년에 금리 인상을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전문가들이 미국의 정책금리가 내년에 3차례 올릴 것으로 전망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현재 0.25∼0.50%인 미국의 정책금리가 내년 말에는 한은 기준금리와 비슷한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은은 미국의 금리 상승에 따른 내외 금리 차 축소로 우리나라에서 외국인 투자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그동안 기준금리 하한에서 자본유출 위험을 고려해야 한다며 "국내 금리가 기축통화국 금리보다 높아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해왔다. 자본유출 위험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한은도 기준금리 인상을 검토해야 할 시기가 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대내적으로는 가계부채 문제가 계속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계부채가 소비 여력을 제약하고 경제 성장의 활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지난달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에 가계부채가 소비증가율을 0.63% 포인트 낮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지 않으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한은은 당분간 기준금리를 묶어두면서 관망세를 이어갈 것으로 점쳐진다. 내년에 국내의 경제 성장 지표뿐 아니라 가계부채,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와 국제금융시장 반응 등 다양한 변수를 따져가며 신중하게 움직일 공산이 크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