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美 트럼프 정부 출범 구경만
첫 정상회담 내년 하반기나 가능
한미FTA 등 현안 조율부터 삐걱
2. 中 사드 압박에도 속수무책
한류 콘텐츠 금지 등 공세 노골화
대응 카드도 없어 궁지 몰릴 처지
3. 日은 주변국과 광폭외교
아베, 트럼프ㆍ푸틴 등 만남 가져
외교공백 한국 보란듯 보폭 넓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사령탑을 잃은 한국 외교는 당분간 제자리를 맴도는 ‘식물외교’ 신세로 전락할 전망이다. 미국은 내달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외교정책 변화를 예고하고 있고, 중국은 한류를 차단하는 보복조치로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우리는 내놓을 대응 카드가 마땅치 않아 갈수록 궁지에 몰릴 처지다.
주변국과의 정상외교가 모두 중단되면서, 당장 이달 말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물 건너갔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회의를 주최한 여세를 몰아 동북아 3국 협력의 지렛대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었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우리가 회의를 무산시키며 외교공백을 자초했다.
내달 20일 새로 출범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은 첫 단추부터 꼬였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시비를 걸고 우리가 부담하는 안보비용에 못마땅해하고 있지만, 이런 미국을 상대로 폭넓게 현안을 논의할 정상간 채널이 닫혀 있다 보니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관계자는 9일 “미 정부와의 조율을 맡을 특사라도 보내 뭐라도 해봐야 할 것”이라며 “하지만 외교부 장관 특사는 약하고, 대통령 특사는 탄핵 와중이라 안되고, 그렇다고 대통령 권한대행 특사를 보내자니 모양새가 이상해져 고민”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신정부 출범 이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열기까지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개월,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3개월이 걸렸다. 반면 박 대통령 탄핵 여파로 국내 정치일정이 불투명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와의 첫 정상회담은 일러야 내년 하반기에야 가능할 전망이다. 시점으로 보면, 미국 정부의 외교 정책의 얼개가 마련된 뒤에 한미 양국 정상이 만나는 것인데, 현안 조율이 어느 때보다 어려울 수 있다. 다른 외교 당국 관계자는 다만 “미국도 정부관료를 인선하고 새로운 정책을 짜는데 수개월 걸릴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의 공세도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 한류 콘텐츠를 금지하는 ‘한한령(限韓令)’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 지시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극구 반대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강행한데다,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GSOMIA)까지 일사천리로 체결하면서 중국을 움직일 당근을 소진했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그나마 박 대통령이 대중 외교의 전면에 나서왔는데, 직무가 정지돼 더 힘이 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 외교가 대통령 탄핵에 발목이 잡혀 허우적대는 사이, 일본은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미국 대선 열흘 만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을 만난 데 이어, 이달 15일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외교의 보폭을 빠르게 넓히고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한반도 주변국과 달리 우리는 당분간 정상외교에 나설 수 없어, 외교의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는 9일 한중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에 이어 16일에는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열고 대북공조를 비롯한 주변국과의 기존 협력을 다지는데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연쇄 고위급회담을 통해 정상회담을 제외한 모든 채널을 총동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당기간 현상유지 외교에 주력할 수밖에 없어, 일각에서는 내년으로 예정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국방부는 “이미 정책결정은 끝났고 집행만 남아 있기 때문에 내달까지 배치 부지에 대한 감정평가를 마치면 이후 부지공여, 설계, 환경영향평가 등의 과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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