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선 “세상이 미쳤다” 반발
탄핵반대 일부 지방정치인들 “…”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박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경북에서도 “사필귀정”이라며 환호성이 터졌다. 표결 직전까지 탄핵반대 입장을 보여온 일부 지방의원들도 “국정혼란 최소화”를 내세우며 대세에 순응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세상이 미쳤다”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았다.
시민단체 “즉각 퇴진 촛불집회 이어갈 것”
촛불집회를 이끌어 온 박근혜퇴진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5시30분 대구의 중심부인 중구 대구백화점 앞 공연장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탄핵가결은 헌법을 유린하고 국정을 농단한 명백한 범죄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하는 민심의 반영”이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고 겁박하는 버티기를 끝내고 지금 당장 청와대를 떠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오후 7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 새누리당 해체 선전전 및 촛불집회”를 열기로 한 데 이어 10일 오후 5시부터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중앙네거리-공평네거리 사이 도로에서 ‘내려와라 박근혜 6차 대구시국대회’도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서승엽 박근혜퇴진대구시민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국민의 승리다!”라며 “솔직히 220표를 넘지 않을 것이라 봤는데 234표가 나온 것은 그를 지지했던 기득권 세력의 붕괴도 포함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국회의원들이 드디어 국민들 뜻을 제대로 들으려 하는 것 같다”며 “이 판을 끌고 온 것은 시민들이며, 특히 대구시민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국민들의 준엄한 명령을 대의기관인 국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국민 촛불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고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건설로 나아가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고, 청와대를 나와 특검을 받아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신속히 탄핵을 결정하고 새로운 국정을 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 시민들 “축배라도 들어야”
일반 시민들도 “축하할 일”, “사필귀정… 이제 쓰레기 국회의원 청소할 때”, “65(반대+기권 등)명을 찾아라”, “234(찬성표)(56(반대표), 외우기 좋다. 국회의원 세비라도 인상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의 격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올리며 환호했다.
김모(53ㆍ회사원)씨는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며 “오늘 저녁엔 친구들과 축배라도 들어야겠다”고 하는 등 축하파티를 계획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였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며 보수를 자처해 온 윤성옥(47ㆍ여ㆍ대구 달서구)씨는 “탄핵안 가결은 잘된 일이다. 잘못한 벌은 반드시 받아야 한다”며 “정치에 회의감이 든다. 앞으로는 누구를 찍어야 할지 확신도 안 서고 우리나라 참 대표자 복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에 실망 서문시장 “당연한 일”
4지구 화재로 큰 피해를 본 서문시장 상인들도 “당연하다”는 반응 일색이다. 2지구 상인 A(53)씨는 “박 대통령을 딸처럼 생각하는 노점 어르신들도 ‘불쌍하긴 해도 나라살림을 최순실 같은 사람한테 맡기는 것은 안될 일로 물러나는 게 맞다’고 하더라”며 “대통령만을 위한 정치를 한 친박, 진박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류성재 서문시장상가연합회 부회장은 “시장 상인들은 탄핵안 가결 될 것이라고 내다봤기에 오히려 당연하다는 반응이다”며 “1일 서문시장을 찾은 대통령이 피해상인들과는 만나지 않고 10분만에 자리를 뜨자 상인들은 그가 본인 명분을 위해 화재현장을 이용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관가는 ‘담담’… “정국안정 우선”
대구시와 경북도 등은 ‘정국 안정’을 강조하며 탄핵가결 찬반에 대한 입장표명은 애써 외면하면서 정국안정을 강조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오후 긴급간부회의를 열어 “대통령을 지지하고 선택했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탄핵안 가결이 국정 정상화 계기가 되도록 국민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10~15일 미국 수업혁신학교 탐방을 전격 취소하고, ‘대구교육공동체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을 통해 “국가가 비록 위기 상황이라 할지라도 대구교육공동체는 학교 현장의 교육활동을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이날 오후 긴급간부회의를 열고 “대한민국 헌정사에 다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불행한 일”이라며 “정치는 탄핵되어도 경제는 살려야 한다”고 피력했다.
류규하 대구시의회 의장은 “시의원 대부분이 탄핵안 가결을 예상했다”고 밝혔다. 류 의장은 “시국이 이러니 지방자치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정부가 흔들려도 지방은 끄떡없다”라며 “대구시의원들은 나라 안정에 일조하는 일이라는 사명을 갖고 대구 살림을 위해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응규 경북도의회 의장도 입장문을 발표하고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북 구미에서도 “당연한 일”
박 대통령에 대한 일방적인 지지로 유명한 경북 구미시 지역에선 착잡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은 개인 의견을 밝히기는 어렵다며 말을 아꼈지만 일반 시민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반응이다.
김익수 구미시의회 의장은 “국정공백과 혼란의 피해자는 국민”이라며 “어려운 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친박 정치인들은 찬성 234표라는 압도적 가결을 의식한 탓인지 대놓고 반대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이 크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반면 일반 시민들은 즉각 퇴진 및 검찰조사를 촉구하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구미중앙시장에서 수십 년째 장사를 해왔다는 오모(64)씨는 “구미는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부끄럽다”며 “박 대통령은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즉시 퇴진해 성실히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며, 끝끝내 버틴다면 물러날 때까지 저 혼자라도 구미역 앞에서 촛불을 들겠다”고 말했다.
구미참여연대 최인혁 국장은 “박 대통령은 이제 대통령으로서 업무가 정지된 만큼 대통령 자격과 권위를 완전히 상실했다”며 “즉각 사퇴하고 특별검사의 수사를 받고 박정희 대통령과 관련된 모든 기념 사업을 중단하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새마을 테마파크 사업도 축소해서 용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구미에서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는 김모(58)씨는 “구미 경제가 많이 어려운데 국가발전과 원활한 국정운영을 위해서라도 청와대에서 하루 빨리 나와야 한다”며 “세월호 침몰 때 자식들이 죽어가는데 머리나 만지고 있었다니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탄핵은 미친 짓” 반발하기도
반면 일부 친박 인사들은 탄핵안 가결에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경북지역 한 전직 지자체장은 “오늘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데 세상이 미쳤다”고 반발했다. 또 이모(63)씨는 “최순실이 잘못한 것이지 박근혜 대통령은 10원 한푼 사적으로 챙긴 게 없는 깨끗한 분”이라며 “거대한 쓰나미에 모든 게 엉망이 될 것”이라며 탄핵결과에 분통을 터뜨렸다.
윤문이 대한민국박대모(박근혜 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모임) 중앙회 경북본부장은 SNS를 통해 “10일 광화문에서 할복할 것”이라며 “일부 매체에서 박사모 등 친박단체에서 할복단을 모집한다고 했는데 전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는 “내일(10일) 광화문에서 할복을 거행할 동지를 모집한다고 올렸는데 마치 친박단체가 할복단을 모집하는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며 “죄 없는 보수단체와 친박단체를 연관시키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영주=이용호기자 lyho@hankookilbo.com
구미=추종호기자 c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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