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찬성하면 파면된다. 위대한 ‘촛불 민심’ 동력으로 헌재까지 다다른 ‘탄핵열차’를 통과시킬지, 막아 세울지를 결정할 헌법재판관들의 면면과 성향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박 대통령이 지명한 헌재 소장과 2명의 재판관을 비롯해 헌재 구성원들은 전반적으로 보수적 색채가 짙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이들 9명의 손에 달렸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주심을 맡게 된 강일원(57ㆍ사법연수원 14기) 재판관이 우선 주목 받는다. 강 재판관은 2012년 여야 합의로 추천돼 헌재에 입성했다. 30년간 사법부에 몸담은 정통 법관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으며, 법원행정처 사법정책ㆍ기획조정실장, 대법원장 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재판 능력을 인정받아 여야가 지명했는데, 무엇보다 헌재 재판관들 중에서 ‘중도적 인사’로 평이 나있다.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사건에선 ‘찬성’(인용) 의견을 냈으며, 지난해 5월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 교사로 제한한 교원노조법에도 ‘합헌’ 뜻을 밝혔다. 올 3월 대통령 비하에 상관모욕죄 적용에 대해 합헌 결정난 헌법소원 사건에서 ‘위헌’으로 소수 의견을 냈으며, 4월 자발적 성매매 여성 처벌에 대해 합헌 결정난 사건에선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처벌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내년 1월 31일 임기 만료를 앞둔 박한철(63ㆍ13기) 헌재소장이 탄핵 인용 여부와 그 결정 시기를 어떻게 판단할지도 중대한 관심 포인트다. 그의 임기 중 탄핵 결정을 내리긴 무리라는 전망이 많지만, “의지 문제”라고 일축하는 헌법학자들도 더러 있다. 박 소장은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추천으로 재판관이 됐다가 박 대통령에 의해 2013년 3월 헌재소장으로 지명됐다.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낸 그는 보수를 대변하는 입장으로 묶인다. 과거 야간 옥외집회 금지 합헌 의견을 낸 것이 예다. 통진당 해산심판사건에서 ‘찬성(인용)’ 의견을 냈고, 교원노조 가입자를 현직 교사로 제한한 법에도 ‘합헌’ 뜻을 냈다. 다만, ‘전자발찌 부착명령 소급적용’에 반대 의견을 내는 등 기본권 보호에는 적극적이란 평을 받는다.
판사 출신의 조용호(61ㆍ10기) 서기석(61ㆍ11기) 재판관도 박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3년 4월 헌재에 입성했다. 이들이 자신을 지명한 박 대통령에 대해 탄핵 의견을 낼 것인지 주목된다.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조 재판관은 올 4월 자발적 성매매여성 처벌 헌법소원이 합헌으로 결론 난 사건에서 ‘위헌’ 의견을 냈으며, 7월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헌법소원에서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포함한 점에 ‘졸속 입법’이라며 소수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서 재판관은 보수 성향의 꼼꼼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통진당 해산사건과 교원노조 현직교사 제한 규정 등에 다수 의견에 포함됐다.
이정미(54ㆍ16기) 재판관은 헌재 구성원 중 유일한 여성으로 2011년 이용훈 전 대법원장의 지명을 받아 최연소 재판관이 됐다.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를 중시해 진보적 성향이란 평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통진당 해산 사건의 주심을 맡아 ‘찬성’의견을 냈고, 대통령 비하 군인 상관모욕죄 처벌 합헌 등 주요 사건에서 박 소장과 함께 다수 의견에 묶였다. 내년 3월 14일 임기가 끝나 박 소장처럼 탄핵 결정에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이진성(60ㆍ10기) 김창종(59ㆍ12기) 재판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명으로 2012년 9월 9인의 현인(賢人) 그룹에 들었다. 두 재판관은 기본적으로 보수 성향이며 재판에서 법 논리를 중시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여당이 추천한 안창호(57ㆍ14기) 재판관은 박 소장처럼 검찰 출신으로 대검 공안기획관 등을 역임했다. 역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김이수(63ㆍ9기) 재판관은 야당 몫으로 지명됐는데, 8 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법조계와 학계를 놀라게 한 통진당 해산심판에서 홀로 반대 의견을 내는 등 진보적 성향으로 평가 받는 재판관이다.
하지만 이런 경향들로 박 대통령 탄핵 결정 여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정미 재판관처럼 알려진 평가와 실제 재판 결과가 다른 경우도 다수다.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 핵심인물의 검찰 공소장에서 공범으로 적시된 박 대통령 혐의들을 감안하면, 헌법이나 법률 위반이 대통령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지를 평가할 때 이념적 성향이 잣대가 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다. 특히 200만여명까지 확산된 ‘촛불민심’이 대단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해 위임한 권력을 박탈하겠다’는 주권자들의 의지를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때 ‘탄핵 반대’가 민심이었던 상황과는 180도 다른, 압도적인 ‘탄핵 찬성’ 민심을 헌재가 외면할 수는 없다고 헌법학자들은 보고 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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