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대한민국의 새 역사가 쓰여집니다. 희망의 시작이 될지 파탄의 씨앗이 될지 국회의원의 한 표 한 표에 달렸습니다.”
8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200m 떨어진 산업은행 앞 마당에 모인 시민 2,000여명은 촛불을 든 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라”고 외쳤다. 직장인 김모(40)씨는 “탄핵안 표결 결과가 부결로 나오면 대의민주주의는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라며 “찬성표를 망설이는 의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9일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지난 6주간 광화문광장을 수놓은 촛불이 여의도로 총 집결했다.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시국 대토론회를 열었다. 당초 8, 9일 이틀 동안 집회ㆍ시위가 금지된 국회 본관 앞 광장에서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했으나 국회 문턱은 넘지 못했다. 대신 정세균 국회의장은 100m 내 집회ㆍ시위 금지규정을 한시적으로 풀어 시민들의 국회 앞 집회를 허락했다.
이날 국회 주변은 탄핵안 가결을 염원하는 시민과 시민ㆍ사회단체 관계자들로 종일 붐볐다. 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된 ‘국회포위만인행동’과 시민 30여명은 여의도공원에 모여 국회를 에워쌀 목적으로 장례에 쓰이는 ‘만장(輓章)’ 500개를 만들었다. 가로 90㎝, 세로 400㎝ 크기의 노란색 만장에는 ‘국민을 믿고 탄핵하라’ ‘세월호 진상규명’ ‘국민 주권 회복’ 등 다양한 국민의 요구가 담겼다. 만장에 문구를 새겨 넣은 양혜경(53)씨는 “박근혜 정권에서 상처를 입은 모든 이들의 바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법 규정의 틈새를 파고든 1인 시위를 하면서 정치권에 감시의 눈을 부릅뜬 시민도 많았다. ‘새누리당, 탄핵가결만이 살길이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1인 시위에 나선 이동수(43)씨는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더 이상 평화시위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고 경고했다.
한때 집회 참가자들과 경찰이 대치하기도 했다. 토론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오후 8시쯤 만장을 들고 국회 정문을 향해 행진을 시도하자 경찰은 차벽으로 행렬을 막았다. 경찰 관계자는 “국회의장 결정에는 법률적 근거가 없어 신고된 집회 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했다. 이에 주최 측이 미리 준비한 폭죽을 터트리며 항의를 이어가자 경찰은 해산명령으로 맞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됐다.
탄핵안 가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여의도 밖에서도 이어졌다. 서울대 교수 796명은 이날 2차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과 법률의 준수가 그 어떤 정치적 고려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즉시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졸업생ㆍ재학생 1,121명도 탄핵 촉구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지역에서도 밤샘 집회를 불사하며 탄핵 가결 여론에 동참했다. 정권퇴진부산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9시부터 새누리당 부산시당 앞에서 1박2일 철야집회를 열었고, 강원 강릉시에선 퇴진행동 소속 회원들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권선동 새누리당 의원 사무실 앞에서 밤샘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탄핵안 표결 당일인 9일에는 최대 1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여의도에 운집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5일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상경을 시도하다 경찰에 저지당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봉준 투쟁단’은 이날 2차 상경투쟁을 선언했다. 경기 평택시청에서 열린 출정식에는 농민 200여명이 트랙터 6대, 화물차 30여대를 끌고 참석했다. 김영호 전농의장은 “더러운 권력을 갈아 엎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역사의 씨앗을 뿌리겠다”고 강조했다. 농민들은 9일 여의도 국회 촛불집회에 참석한 뒤 7차 촛불집회가 열리는 10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치를 예정이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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