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아이는 학대가 아니라 안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눈물 흘리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려고 태어났음을 모두가 명심합시다.”
1970년대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프로레슬링 만화 ‘타이거마스크’ 스토리를 현실에서 구현한 주인공이 6년 만에 정체를 공개했다. 도쿄 고라쿠엔(後樂園)홀에서 7일 열린 프로레슬링 이벤트에서 군마(群馬)현에 사는 회사원 가와무라 마사타케(河村正剛ㆍ43) 씨가 깜짝 등장해, 일본사회에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가와무라씨는 특히 초대 타이거마스크로 유명한 프로레슬러 사야마 사토루(佐山聰)와 함께 링에 올라 관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사야마 씨가 “이곳에 신념을 가진 진짜 다테 나오토가 있다”고 소개하자 놀란 관객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만화 타이거마스크는 보육원 출신인 주인공이 사악한 레슬러들을 키우는 ‘호랑이굴’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이곳에선 대전료의 절반을 걷어가는데 주인공은 보육원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실을 알게 돼 전액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호랑이굴의 다른 레슬러들이 분노해 주인공을 꺾으려 하면서 수많은 대결이 벌어지는 스토리다.
비슷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 것은 6년 전인 2010년 성탄절. 군마현 마에바시(前橋)시 중앙아동상담소 정면출입구 앞에서 등에 메는 초등학생용 책가방 10개가 들어 있는 빨간색 종이가방이 발견됐다. 책가방 가격은 합계 30만엔(당시 400만원 정도). 발신인의 주소나 연락처는 없었고 ‘다테 나오토(伊達直人)’란 이름과 “책가방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 주십시오”라는 짧은 내용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다테 나오토는 타이거마스크의 주인공 이름이다.
언론에 소개된 사연은 일본 전역에서 선행 릴레이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곧바로 2011년 1월1일 밤에 가나가와(神奈川)현 오다와라(小田原)시에서도 똑같이 아동상담소 현관에 책가방 6개가 발견됐고 다테 나오토란 이름과 함께 “작년 12월 군마현에서 벌어진 일을 뉴스에서 보고 감명받았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이렇게 해본다”고 적혀 있었다. 익명으로 곳곳의 아동시설에 책가방을 비롯해 기저귀, 닭, 쌀, 현금 등이 보내졌고, ‘남몰래 기부’는 1,000여 건에 이르면서 ‘타이거마스크 현상’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선행 릴레이를 촉발한 가와무라씨는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사망한 뒤 책가방 살 여유가 없어 천으로 된 손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다며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19년 전부터 아동보호 시설 지원활동을 해온 그는 사회에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6년 전 타이거마스크의 이름으로 선물을 보내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공개한 데 대해 “얼굴을 보이는 것이 아이들에게 위안도 되고, 지원하는 사람이 영웅이 아니라 보통사람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며 “아동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에서 나온 아동을 지원하기에는 개인, 기업, 단체로선 한계가 있으니 행정당국도 나서주길 바란다”며 아동을 지원함으로써 “나의 과거는 바꿀 수 없어도 아이들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도쿄=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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