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량진에는 수산시장이 두 개가 있다. 수협중앙회가 국고보조금 1,540억원을 받아 신축한 현대화 시장과 이전을 거부하는 300여 명의 상인이 남아있는 기존 시장이다. 밖에서 얼핏 보기엔 상인들이 왜 새 건물을 마다할까 싶다. 그런데 현대화 건물은 ‘수산시장’을 모르는 이들이 탁상에서 디자인한 건물이다. 수도권 최대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신선도와 물량을 감당하면서 운송, 저장, 판매, 가공 기능을 하는데 턱없이 모자란 ‘수산마트’라는 것이다.
상인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수협중앙회는 주차장을 포크레인으로 막아 폐쇄하고, 가스와 수도를 차단했으며, 용역을 동원해 이전을 종용했다. 추첨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가를 주지 않겠다고 협박하고, 상인들이 제주 강정마을처럼 공사 지연배상금을 물게 될 것이라는 경고방송을 끝없이 되풀이했다. 또 이전을 전제로 하지 않는 대화는 없다고 못 박았다. 문제 제기에 모르쇠와 여론조작, 탄압으로 일관하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의 한결같은 모습이다.
수협중앙회가 상인들의 이전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기존 시장부지에 추진하는 부동산 개발 때문이다. 2007년 8월 해양수산부는 ‘노량진수산시장 제2 아셈몰로 거듭난다’는 보도자료를 통해 수산테마파크 건립을 추진해왔다. 2015년 수협중앙회는 기존 시장부지를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복합리조트 사업에 신청했다. 이창우 동작구청장도 지상 52층 규모의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리조트가 서울 균형발전을 위한 교두보라며 지원하고 나섰다. 수협이 복합리조트 사업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이성한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TF위원이었고, 차은택을 자문위원으로 추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부동산 개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밤낮으로 장사만 하던 상인들이 현대화 사업을 통해 직면하게 된 한국사회는 불통과 책임방기로 점철돼 있었다. 현대화 사업 주무부처는 해양수산부다. 한편 노량진수산시장은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에 의해 도매시장으로 서울시장이 시장개설자이며, 관리감독 책임을 진다. 그런데 수협이 2002년 한국냉장으로부터 토지와 건물, 도매시장법인 ㈜노량진수산을 인수하면서 서울시를 무력화시킨 채 시장 주인행세를 해왔다. 서울시도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과 책임을 회피해왔다. 해양수산부는 현대화사업 과정에서 시장개설자인 서울시가 아닌, 민간단체에 불과한 수협중앙회에 국조 보조금을 지원했다. 법으로 정한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상인들만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상인들은 현대화 사업 과정의 부조리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수산시장 문제는 이제 현대화 건물로 이전하고 안 하고의 문제를 넘어섰다. 상인들이 서울시민 5,000명의 청원을 받아 시민공청회를 열고, 이성한과 차은택을 검찰에 고발한 것은 진실을 알기 위해서였다. 현대화 사업에 대한 자료를 모두 공개하고 조사해서 해양수산부와 수협중앙회, 서울시가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밝혀야 수산시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을 열어온 상인들은 수산시장의 정취와 멋이 살아있는 전통시장을 리모델링하는 것이 관광객 유치와 수산물가격 안정 두 가지를 모두 지킬 방법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요즘 상인들은 매주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간다. 지금껏 시민을 ‘개, 돼지’로 취급하는 무소불위의 횡포와 낡은 관행을 일삼는 권력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도 청와대에서도, 전경련에서도,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시민’이 아니라 나쁜 권력과 기득권이 주인 노릇을 했다. 우리는 이에 분노하며 촛불을 든 것이다. 촛불 혁명은 한국사회 모든 기득권과 갑질에 대한 경고이다. 우리는 이제 예전의 우리가 아니다. 수산시장 상인들이 촛불을 드는 이유이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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