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8
민간 정책연구소를 뭉뚱그려 ‘싱크탱크’라 한다. 정치형태로서의 민주주의,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국가 조직과 시스템, 정책 등으로 구현되는 데 기여한 바를 기려 그들을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계에는 이름난 민간 연구소만 7,000여 개가 있고, 영향력 평가 등에서 늘 1위를 지켜온 곳이 미국 워싱턴D.C의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다.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인 300여 명의 연구자들이 공유하는 연구소의 지향은 ‘독립과 통합, 다양성과 포괄성(Inclusion)’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1927년 12월 8일 탄생했다. 국가 운영, 특히 세금으로 예산안을 짜고 집행하는 일을 정부 관료들에게만 맡겨두는 게 미덥지 않았던 개혁 성향의 전문가들이 만든 ‘정부 연구소(Institute for Government Research, 1916년)’, 그 연구소를 후원하던 사업가 로버트 브루킹스의 경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s, 1922년), 브루킹스 대학원(1924년)이 합쳐진 거였다. 이념이 아닌 효율과 합리에 바탕을 둔 연구소는 출범 초기부터 정치ㆍ이념적 중립을 표방해왔다. 그 점이 이념을 중시하는 보수 성향 연구소와 차별화하면서 진보ㆍ자유 성향의 연구소로 인식되게 했다.
연구소는 20년대 연방예산국 설립과 복지법 제정의 초안을 만들고, 40년대 유엔창설과 마셜플랜의 실행 계획을 작성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냉전기 군비 증강서부터 미국의 사회보장제도, 90년대 대외 안보정책을 집단안보에서 지역협력안보로 전환하는 밑그림 등이 거기서 나왔다. 오늘의 브루킹스연구소는 재정 공공정책 외교 안보 등 국가 기능 거의 전반을 포괄하는 종합연구소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경쟁력은 지침이나 목표에 종속되지 않고 중립적ㆍ초당적 연구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에서 나온다. 연구원이 정부 기관에서 일하거나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값진 경험으로 보아 환영 받지만, 그 경우에는 연구소 떠났다가 돌아와야 한다. 그 인적 네트워크가 미국 국내ㆍ외교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또 연구소의 영향력을 키워온 것도 사실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는 동북아정책연구소가 별도로 있다.
펜실베이니아대 로더연구소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프로그램(TTCSP)’이 매년 발표하는 2015 보고서의 ‘올해의 싱크탱크’ 1위도 브루킹스연구소였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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