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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윤서명 대구 수성레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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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윤서명 대구 수성레더 대표

입력
2016.12.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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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명 대구 수성레더 대표가 가죽이 복원, 염색된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윤서명 대구 수성레더 대표가 가죽이 복원, 염색된 가방을 보여주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교통사고 아픔 딛고 재기, 오뚜기처럼 가죽 달인을 꿈꿉니다.

대구 유일의 가죽 복원, 염색, 수선 전문점

가죽을 복원이나 염색, 수선 작업이라고 하면 낡은 작업대와 희끗희끗한 머리에 작업복을 걸친 노인이 떠오른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수성레더에서는 반대다. 백화점 명품관처럼 생긴 매장을 들어서면 물감 묻은 앞치마를 걸친 아가씨가 고객을 맞는다. 스물 아홉의 윤서명씨는 마치 그림을 그리다 나온 미대생 같아 보인다. 그의 원래 꿈은 경찰관이었다. 그러나 교통사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로는 변경했다. 그는 경찰관의 꿈을 접고 이 길로 뛰어들었다.

“사고 후 6개월 넘게 병원생활을 했어요. 허벅지뼈가 부러졌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소변줄을 꼽고 있는 모습도 비참했지만, 경찰관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퇴원하면 뭘 해야 할까 막막했죠.”

재활치료 후 어학연수를 떠났다. 거기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발견했다. 한 가죽복원전문점을 들렀다. 그는 자기 또래의 여자가 수선부터 염색까지 혼자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가죽복원은 물론 가죽으로 만드는 건 뭐든 하더라고요. 너무 신기해서 한나절을 구경했어요. ‘이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뢰받은 명품 가방을 에어 스프레이건으로 염색 작업하고 있다.
의뢰받은 명품 가방을 에어 스프레이건으로 염색 작업하고 있다.

문전박대를 극복하고 배운 가죽 기술

한국에는 정규과정은 커녕 배울 곳도 없었다. 무작정 염색하는 공장을 찾아가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모두 다 코웃음을 치거나 문전박대를 했다. 카시트나 가죽 소파 복원을 하는 곳까지 찾아갔지만 허사였다. 몇 달 동안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까지 하면서 매달렸지만, 그에게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 업체에서 프렌차이즈를 하면서 기술을 가르켜 주었다. 1주간의 교육을 받고 손님을 받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 뒤 매장자리를 알아봤다. 교통사고 보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작은 매장을 오픈했다. 주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들어왔지만, 제품경험보다 의욕만 앞서 제대로 가격도 못 받고 주문이 밀려 손님들의 불평이 점점 늘었다. 반년 넘게 적자였다. 일은 넘쳤고 수익이 거의 없었다.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폐업을 해야 하나’하고 고민했다.

염색과 복원작업을 한 탓에 그의 손에는 항상 얼룩이 져 있다.
염색과 복원작업을 한 탓에 그의 손에는 항상 얼룩이 져 있다.

경험이 최고의 재산

적자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한 후 내린 결론은 이론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이었다. 가죽별로 특징을 파악해 자료를 정리하고 숙지했다. 여러 가지 복원제 등을 조합해 써 보기도 했다. 시행착오 끝에 그는 딱 맞는 연습재료를 찾았다. 몰래 버려진 가방이었다. 그것만큼 좋은 재료가 없었다. 일과가 끝나면 재활용 쓰레기통에 있는 가방을 주우러 다녔다. 나중에는 인근에서 ‘멀쩡한 아가씨가 쓰레기통을 뒤지고 다닌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경험이 쌓일수록 시행착오도 줄었고 복원이나 염색을 맡긴 손님들이 자신의 제품을 몰라볼 정도로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냈다. 이제는 혼자 소화하기에는 벅찬 물량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 대표가 손상된 구두를 가지고 온 고객과 복원 상담을 하고 있다.
윤 대표가 손상된 구두를 가지고 온 고객과 복원 상담을 하고 있다.

“솔직히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대학생 때 가죽 관련 판매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쪽 계통으로 일하게 될지 꿈에도 몰랐어요. 손님들은 ‘정말 감쪽같다’고 엄지를 치켜세우지만,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해요. 2~3년은 쓰레기통을 더 뒤져야 할 것 같아요. 호호!”

젊은 아가씨가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는 소문이 돌면서 밀려드는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오픈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손을 거친 것만 300여점에 달한다.

윤 대표가 작업한 의뢰 전 제품의 사진(왼쪽)과 복원 염색이 완성된 후의 제품 사진.
윤 대표가 작업한 의뢰 전 제품의 사진(왼쪽)과 복원 염색이 완성된 후의 제품 사진.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큰 스승이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계통은 기술만 있고 학문적으로는 불모지에요.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넓혀가고 있어요.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이 직종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체계적으로 기술을 전수해주고 교육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보를 공유하고 더 발전시키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관련 계통의 강의나 수업을 통해 많은 저와 같은 뜻을 가진 이들과 함께 즐겁게 작업하는 날을 기다리고 있어요.” / 대구 수성레더 053-768-1219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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