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Independence Day(1996)에서는 대통령을 수행하던 국방장관이 기자들의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님, 두 단어만 기억하십시오, 모르쇠’(Two words, Mr. President-Plausible deniability)라고 말한다. 또한 TV series X-Files나 Dark Skies, Taken 등에서도 정부는 ‘알지 못한다’는 말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Nevada주에 있는 Area 51이 비밀스런 군사 시험 장소이고 외계인이 거주하면서 무기 개발을 돕는다는 소문이 나돌 때마다 미국 정부는 한결같이 함구하거나 모른다고 말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한다.
‘Plausible deniability’는 케네디 정부 때 CIA의 비밀 공작에 대해 언론의 질문이 나올 때 생긴 말인데, ‘우리는 그런 거 모른다’는 면피성 대답이 이제는 정치 언론 종교 일상에까지 두루 적용되고 있다. 미국 상원의 청문회(Senate Hearing)에서 증인으로 나오는 사람들도 잘 모른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 역시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plausible deniability라고 부르고 무엇보다도 정치인의 ‘모르쇠’ 언행을 지칭할 때 이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Plausible은 ‘그럴싸한’의 뜻이고 deniability는 ‘부인’인데 이를 좀더 쉬운 말로 풀어 쓰면 ‘합리적 의심’이고 ‘Reasonable Doubt’이다. ‘그럴만한 이유’ ‘그럴만한 부인’ ‘당연한 의심’이 가능할 때는 ‘당연히 부인할 수 있다’(You have plausible deniability)거나 ‘You have a valid excuse’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니 부인하면 됩니다’의 뜻으로 확대 적용되고 정치인들의 면피성 발언이 책임 회피로 일관될 때 ‘모르쇠 작전’의 표현으로 쓰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일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해도 상대측에서 이를 반박하기 어려울 때 이런 작전이 먹혀 든다. 관제 데모에 일당을 받고 나갔는데 동원된 사람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나왔다’고 말하면 이 역시 plausible deniability다. 일상의 경우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 방귀를 뀌었는데 바로 옆 사람을 의심해서 ‘Was it you?’(당신이 뀌었지?)라고 물어도 ‘Not me’라고 말하면 그만이다. 왜냐하면 그것을 증명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부인하기 쉬운 것이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건을 전후하여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이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고 청문회에 불려 나온 증인들 특히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전직 관료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모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모르쇠 작전만 보인다.
흔히 ‘They have plausible deniability’라고 말하는 것은 ‘내 말이 틀리다면 당신네가 증명해 보세요’ 같은 오만이나 무시가 깔려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위증(perjury)을 하여도 이를 처벌 수위는 높지 않기 때문이다. ‘알고 있어도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They know the facts in question, but they can deny the knowledge.)라고 말할 수도 있고 개인 차원에서 자기 방어로 ‘I have plausible deniability’라고 말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공적인 영역에서 이 말이 남용되는 것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눈치가 명령’(Signals are orders.)이거나 비공식 채널에서 나오는 ‘It didn’t happen.’ ‘I am not in a position to comment’ 같은 말은 분명 법적으로 보면 고의적 모르쇠(Willful blindness)이고 범죄라고 한다.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며 책임을 회피하는 언어는 아마도 가장 불명예스럽고 증오스런 언어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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