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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마음의 기하학’

입력
2016.12.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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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누구나 좋아하는 자기의 공간이 있다. 내가 서울에서 사랑하는 공간 중 하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그 주변이다. 경복궁 동쪽 돌담 바로 앞에 있는 소격동에 이 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2013년이었다. 서울관에는 여러 모양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오래전부터 터 잡고 있던 기무사 건물이 있고, 바로 옆엔 세련된 현대식 건물이 있다. 그리고 뒤쪽엔 조선 시대 종친부 한옥이 복원돼 있다. 서로 다른 시대들이 공존해 있는 것부터 흥미로운 감흥을 일으킨다.

서울에서 태어나 내내 살아온 내게 소격동 주변 동네는 늘 그리운 곳이다. 지하철 안국역에서 내려 풍문여고와 덕성여고를 옆에 두고 감고당길을 걸어가면 그 끝에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만나게 된다. 소격동의 동쪽으론 화동이, 남쪽으론 사간동이, 북쪽으론 팔판동이 펼쳐진다. 10대에 오르내리던 정독도서관, 20대에 영화를 보러 왔던 아트선재센터, 30대 이후 자주 와서 커피를 마셨던 삼청동길은 전통ㆍ현대ㆍ탈현대가 공존하는, 내겐 시대를 초월한 듯한 곳이다.

지난가을 어느 날, 여기 소격동에서 예기치 않게 내 마음을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한 김수자의 ‘마음의 기하학’ 전(展) 덕분이었다. 지금도 전시가 진행 중인 ‘마음의 기하학’ 전은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 2016’으로 마련된 것이다.

그동안 설치미술에 대해 별 호감을 느끼고 있진 않았다. 설치 미술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직업이 상담사라서 그런지 몰라도 어떤 미술이라 하더라도 대중에 대한 배려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안겨주지 못하는 작품이라면, 그 작품이 뛰어난 걸작이더라도 대중에겐 성공한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내 속 좁은 판단이었다.

그런데 ‘마음의 기하학’은 달랐다. 이번 전시에 김수자가 내놓은 첫 번째 작품 ‘마음은 기하학’은 신선했다. 지하에 위치한 전시실에 들어가니 한가운데 큰 타원형 탁자가 놓여 있었다. 안내원은 찰흙 한 덩어리를 주며 둥근 공 모양으로 빚은 다음 탁자 위에 굴리라고 했다. 작가가 관람객에게 요청한 행위였다. 전시실 안엔 작가의 또 다른 음향 작품이 들려 왔다. 작가가 진흙 공을 굴리는 소리와 입안을 가글하는 소리를 담은 ‘구의 궤적’이다.

김수자는 이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으로 하여금 시각ㆍ촉각ㆍ청각을 모두 느낄 수 있게 한 독특한 체험을 안겨주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찰흙을 떼어내 작은 공을 만들면서 나는 찰흙이 내 마음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만약 마음이라는 게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것이라면 나도 가끔 내 마음을 떼어내 부드럽고 둥글게 되도록 온갖 정성을 다해 빚고 싶었던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두 손으로 조심스레 찰흙을 공 모양으로 만드니 상처 난 내 마음도 둥글고 부드럽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공을 다 만든 다음 탁자 위에 굴려 보니 눈 앞에 펼쳐진 큰 타원형 탁자가 마치 넓고 푸른 우주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실을 가득 채운 작가의 진흙 공 굴리는 소리와 가글하는 소리는 내 마음의 공이 우주로 굴러가는 소리처럼 들렸다. 둥글게 빚어진 내 마음의 상처는 데굴데굴 우주 속으로 굴러가면서 치유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의 기하학’을 새삼 떠올린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많은 국민이 갖고 있는 상처 때문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무책임한 대통령은 국민 다수에게 씻기 어려운 상처를 안겨줬다. 국민이 느낀 배신과 절망의 마음은 어디에서 치유받아야 할까. 우선 국민 다수가 대통령을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으로 생각하지 않는 만큼 국회는 탄핵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상처가 아물 수 있게 서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 위로를 안겨주었으면 좋겠다. 마음의 상처 없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한다.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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