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014년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선고 전에 재판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보면 2014년 12월 17일 난에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뜻하는 ‘長’(장)이라는 글자 아래 ‘정당 해산 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헌재는 이틀 뒤인 12월 19일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통진당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 결정이 나기도 전에 청와대가 이미 재판 결과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다. 당시 메모에는 ‘지역구 의원 상실 이견_소장 의견 조율 중’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당시 헌재 재판관들 사이에서는 통진당 해산 시 지역구 의원직 상실 여부를 놓고 이견이 있었고 박한철 헌재 소장이 이를 조율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메모대로라면 청와대가 헌재 내부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던 셈이다. 앞서는 2014년 10월17일 박 헌재소장이 “통진당 해산 심판 선고를 올해 안에 할 것”이라고 발언하기 2주 전 김 전 실장이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언급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헌재는 그동안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재판 선고 시기와 내용 등 일체의 과정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 왔다. 특히 통진당 해산 심판 사건은 워낙 민감한 사건이어서 재판관들 외에는 헌재 관계자들도 전혀 내용을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판 결과와 진행 상황 등을 청와대가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는 건 청와대와 헌재 간에 부적절한 접촉이 있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헌재는 “청와대에 정보를 준 적이 없고,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의혹을 부인했지만 드러난 사실로는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헌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9일 국회를 통과하면 탄핵 심판을 맡게 된다. 이번 건이 사실이라면 탄핵 심판에서도 같은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인 헌재는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이 생명이다. 헌재는 무조건 아니라고만 할 게 아니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의혹을 해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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