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 장기화로 한계상황에
176개사 워크아웃ㆍ퇴출 ‘수술대’
전북 군산시 전기장비업체 A사는 선박용 전기 케이블 제조 기술로 시장에서 이름을 날렸지만 지난해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2014년만 해도 매출액이 300억원을 웃돌 만큼 탄탄했지만 지난해 조선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매출은 반토막이 나고 순이익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 회사 대표는 창고에 쌓인 재고물량을 털어내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벌어들인 수익으로 은행 대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내몰리게 됐다. 이 회사는 결국 최근 진행된 주채권은행의 신용위험평가에서 C등급을 받아 구조조정 수술대에 오르게 됐다.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경기가 이렇다 할 회복 조짐을 보이지 못하면서 A사처럼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도산 위기에 내몰리는 중소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내수시장과 수출 대기업에 의존도가 높은 제조 중소기업들이 대거 구조조정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경기 침체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점점 한계상황으로 내몰리는 모습이다.
대기업 의존도 높은 제조업 부문
갤노트7 사태ㆍ수출 부진 직격탄
금융감독원이 6일 발표한 ‘2016년 중소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 결과에 따르면 올해 중소기업 176곳이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다. 작년보다 1곳 늘어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512곳) 이후 최대치다.
이는 시중은행들이 최근 석 달간 3년 연속 적자를 본 기업을 비롯해 재무상태가 취약한 중소기업 2,035개사를 상대로 부실 위험 정도를 따지는 신용위험평가를 한 결과다. 신용위험등급은 A~D 네 등급으로 나뉘는데, 이 중 C, D 등급이 구조조정 대상이다. C등급 기업(71곳)은 결과 통보일로부터 3개월 내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해야 하고,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없어 사실상 퇴출 대상인 D등급 기업(105곳)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새로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따라 채권은행들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 절차를 밟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여신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경기 침체의 직격탄은 제조 중소기업에 집중됐다. 구조조정 대상 기업 176곳 중 125곳(71%)으로 지난해보다 20곳이나 늘었다. 금속가공품(22곳)을 비롯해 전자부품 제조업(20곳), 기계장비 제조업(19곳) 등 순인데, 대부분 자동차나 전기·전자업종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이다. 최근 삼성전자의 갤럭시노트7 리콜사태와 자동차 수출 부진에 따른 여파가 고스란히 중소기업으로 전달된 것이다.
미국發 금리 인상 먹구름
3곳 중 1곳 “환란 준하는 위기”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내년부터 국내 시중금리 인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기업 구조조정까지 빨라지면 내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으로선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미래 전망이 암울하다 보니 중소기업 3곳 중 1곳은 현재 상황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에 준하는 위기에 처했다고 인식할 정도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비용을 줄여 효율을 꾀하기 어려울 만큼 기업환경이 나쁘다”며 “대내외 경기를 고려할 때 중소기업엔 내년이 더 힘든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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