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파 겪은 김승연·최태원 ‘태연’
최고령 정몽구는 횡설수설
신동빈은 한국어 실력 좋아져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특위 청문회는 주요 그룹 총수들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냈다. 잘 짜인 각본 아래 진행되는 공식적인 행사 외엔 거의 공개된 적 없는 총수들의 개성과 스타일이 가감없이 생중계되면서 해당 기업들의 희비도 크게 엇갈렸다.
이날 증인으로 참석한 총수들은 이재용(48)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몽구(78ㆍ현대차) 최태원(56ㆍSK) 구본무(71ㆍLG) 신동빈(61ㆍ롯데) 허창수(68ㆍGS) 김승연(64ㆍ한화) 조양호(67ㆍ한진) 손경식(77ㆍCJ) 회장까지 총 9명. 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선 이들은 전 국민 앞에 자신을 노출했다.
가장 많은 질문 세례를 받은 이 부회장은 ‘모범답안형’이다. 그러나 “송구스럽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가 부족한 게 많다” 등의 준비된 답변을 남발, 의원들의 질타도 불렀다.
최고령 증인인 정 회장은 ‘동문서답형’으로 청문회장 공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대가를 기대하고 재단 기금 출연을 했는가”란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질의에는 “크리스마스 때나 이런 때도, 지금 하는 것을 다각적으로 일년이고…정확히 보고 드리겠다”고 횡설수설했다.
정 회장은 특히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기 말을 시작하거나, 마이크를 대지 않고 답변을 하는 등 급한 성격도 드러냈다. 잇단 동문서답에 답답해진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증인 답변이 부적절하다”며 정 회장을 수행한 변호인에게 대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김 회장과 최 회장은 검찰 수사와 구속, 실형까지 겪은 ‘산전수전형’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건한 모습을 보였다. 김 회장은 “기억이 안 납니다”는 답변조차 고개를 내민 채 묵직한 음성으로 태연하게 했고, 최 회장은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요구에 무표정한 얼굴로 “선친에게 뒤지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고 답했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모금을 주도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라 부담이 두 배인 허 회장은 다소 긴장한 듯 양손을 수시로 모았다 펼치는 장면이 포착됐다.
지난 9월 한진해운 법정관리를 포함한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 청문회를 겪은 조 회장은 상대적으로 준비를 많이 한 듯 보였다. ‘준비철저형’인 조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대한항공 내 인사 청탁에 대해 “그렇게 보고받았지만 원칙대로 했다”고 답했고, 다른 질문에도 준비한 자료를 들추며 구체적으로 말했다.
‘신중형’인 구 회장은 평소 알려진 대로 차분한 자세로 조용하게 대답했고, 신 회장은 아직 억양까지 완벽하진 않지만 지난해 롯데 사태 때보다는 일취월장한 한국어 실력을 보여줬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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