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머니에 관한 네 개의 기억’이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열었다.
20여 년 가까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캄보디아 인도 네팔 티베트 인도네시아 이라크 북한 등 8개 나라를 오가면서 나도 모르게 담아왔던 여러 어머니의 형상을 담아낸 전시였다. ‘나도 모르게’라는 수식을 넣은 이유는 그 여정들 모두가 애초 어머니를 주제 삼아 나섰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목적을 둔 상황 속에서 우연히, 때론 즉흥적으로 마음이 끌렸던 순간들을 기록한 것인데, 예를 들어 네팔 티베트난민촌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살피러 갔다가 문득 어머니들의 모습에 눈이 꽂혔던 경우랄까. 그래서 이 사진전은 ‘생명가치의 회복’이라는 평소의 주제의식에서 다소 벗어난 순전히 개인적 감정에 치우쳐 기획한 전시였다. 전시장의 벽면을 ‘웃으시다, 살아내시다, 맞서시다, 우리가 벗은 허물’이라는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각 나라 어머니들의 모습을 두루 채운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가장 안쪽 벽면에는 내 어머니의 모습을 걸었다. 모두가 타인의 어머니였지만 모두가 내 ‘엄마’였다.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였다.
전시를 연 갤러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어머니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들, 즉 사람과 그들의 삶에 관한 기록이다. ‘작아 보이나’ 결코 작지 않은 삶의 면면들을 사진에 담고, 사연까지를 채록해 덧대었다.”라고 소개했다. 나는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내는 것과는 별개로 어느 누군가의 할머니이자 어머니들과도 꽤 많은 대면의 시간들이 있었다. 가까이 앉아 숨을 교환하면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목을 타고 흐르는 음성에 살아온 세월이 실려 오고, 외양이 얹힌 몸짓에 질곡의 인생이 묻어 나왔다. 낯선 이방인의 섣부른 걸음 앞에 그들은, 어머니들은 나를 품어주었고 나는 마냥 좋기만 했다.”라고 작업 노트를 풀었다.
국내외 여기저기를 떠돌던 시절 세상 어머니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일체감으로 몸을 떨었다. 여민 옷 틈새로 늙어 축 처진 가슴에 한세월을 견딘 위대한 삶을 보았고, 볏짚 단과 나뭇가지를 머리에 인 모습에 세상살이의 무게를 실감했다. 수십 년의 기다림 끝에 자식을 만났거나 어이없이 자식을 잃고 울부짖는 심정을 공감했으며, 늘 양보하고 희생하면서 가족을 돌보는 평범한 어머니들의 모습 속에서 한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쓰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세상 속 어머니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울거나 웃었다. 그 안에서 나의 ‘엄마’를 느꼈고 그래서 타인의 당신이 아닌 우리 엄마를 보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 애잔했고 뭉클했으며 안쓰럽다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순간들이 늘 눈에 들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내 엄마이니 외면할 수도, 가벼이 스치거나 겉모습만 거두어 갈 수도 없다.
세상 모든 어머니를 보며 느꼈던 일체감은 올해로 여든네 해를 살아오신 내 어머니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당신의 일부이자 자식으로 살아오면서 마찬가지로 ‘애잔했고 뭉클했으며 안쓰럽다가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어머니의 삶을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삶 아래로 낮추시고는 일평생을 살아내신 어머니에게 이제는 즐거운 삶을 찾아보시라고, 즐길 거리도 좀 찾아 나서시라고 괜스레 투정을 부린 적도 종종 있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하는 희생의 삶을 무조건 받기만 했던 나의 부질없는 항명이자 당신에 대한 연민이 뒤섞인 감정이었을 뿐이지만.
최근 어머니는 급작스럽게 건강을 잃으셨다. 더는 손쓸 수 없이 호스피스 병원 침상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보면서 이 비현실 같은 현실을 인정하기가 참으로 쉽지가 않다. 누구든 겪는 일이라며 심정을 누그러뜨려 보지만, 세상 모든 자식처럼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막막하기만 하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숨결이 있는 어머니의 몸을 가슴으로 살피는 일뿐이다. 다만, 어머니와 나눈 오랜 시간을 더없이 귀하게 돌아보게 되는 지금, 먹먹함 속에서 확인하게 되는 당신의 존재감은 한없이 넓고 크다. 세상 모든 어머니처럼.
임종진 달팽이사진골방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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