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수는 길고양이다. 2년 전 우리 동네에 나타나자마자 동네 터줏대감 고양이들과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워서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고양이들의 영역 싸움은 치열해서 생명을 잃기도 하고, 싸우는 소리에 이웃들의 원성도 높아진다. 동네 길고양이들이 모두 중성화수술이 되어서 평온한 동네에 이게 웬 난리인가 싶었다. 며칠 머물고 떠나는 고양이들도 있어서 그러길 바랐건만 갑수는 눌러 앉았다. 별 수 없이 잡아서 중성화수술을 시키고 방사했는데 고양이의 삶도 미래를 알 수 없는 법. 2년이 지난 지금 갑수는 동네의 귀염둥이가 되어서 길고양이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연일 고양이들과 쌈박질하고 다닐 때는 몰랐는데 갑수는 사람을 꽤 좋아하는 인간친화형 고양이였다. 눈에 하트를 담아 자신을 향해 달려와서 몸을 비비는 고양이를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다 보니 점점 갑수에게 호감을 갖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제는 이웃들이 먼저 내게 갑수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 이웃들의 관심사는 갑수 겨울나기다. 추운 겨울을 길에서 나야 한다니 다들 마음이 쓰이는 것이다.
사실 추위가 시작되면 캣맘은 비장해진다. 겨울에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 길고양이가 많다 보니 겨울 채비에 마음이 바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추위를 피할 곳이 필요해서 스티로폼 박스, 단열재 등을 이용해서 집을 만드는데 문제는 ‘어디에 두느냐’다. 집을 놔둔다는 건 “여기에 길고양이 밥을 줍니다”라고 밝히는 것과 같다. 그러다 보니 아예 집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캣맘이 많고, 용기를 내서 집을 만들고 겨울이 지나면 철거하겠다고 글을 써서 붙여 보지만 며칠 되지 않아 집이 없어지거나 훼손되는 경우도 많다. 얼어 죽는 것만 막아보자고 만드는 집인데도 길고양이에게는 이 정도의 공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래서 캣맘의 활동은 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중성화수술을 시키는 것보다 길고양이를 함께 사는 지역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이웃을 설득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 무슨 일이나 가장 힘든 건 사람을 대하는 일이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도 시작과 끝은 늘 사람이다.
서적 ‘이 많은 고양이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고양이 구조 활동을 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팔고, 사고, 사소한 이유로 버리고, 포기하고, 길 위의 고양이를 학대한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다시 손을 내미는 것도 사람이고, 고양이는 그 손을 내치지 않는다.
배수로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가 구조된 새끼고양이 보보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긴 입원치료에도 장애가 생겼다. 하반신 마비와 양쪽 눈의 시력 상실. 보보는 구조된 동네에서 태어난 장애가 없던 고양이라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이유 없이 보보를 심하게 구타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말려서 구타는 멈췄지만 누구도 다친 보보를 구하지 않았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행히 보보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보보는 장애고양이를 입양해준 고마운 사람, 형제 고양이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보보가 행복한 걸 보면서도 나는 사고 후에 곧장 구조되었다면 장애가 없었을 거라는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지켜보던 많은 사람 중 한 명이라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면 말이다.
물론 나도 안다. 다들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구조한 후 오롯이 자신이 져야 하는 경제적, 시간적 손실과 마음고생까지. 하지만 보보는 동네 고양이였고, 평소 지역사회가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있었다면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만약 우리 동네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선뜻 자신이 구조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든 누구든 동네 캣맘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평소 갑수의 홍보활동 덕분에 길고양이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이웃들이니 그럴 거라고 믿고 싶다.
사람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길고양이에게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보보를 구조한 활동가는 장애고양이를 왜 구조하느냐는 물음에 답한다. “살아있으니까.” 길고양이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고자 하는 생명임에 동의하는 이웃이 많아지면 좋겠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이 많은 고양이는 어디에서 왔을까?, 김바다 외, R(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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