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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빛 바랜 ‘수출입국’

입력
2016.12.0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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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로 번영을 일구자는 ‘수출입국(輸出立國)’은 우리 경제개발 역사를 이끌어 온 핵심 기치였다. 일제 강점기와 6ㆍ25 전쟁으로 철저히 초토화한 나라엔 자본도 기술도 시장도 거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외국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이나 대체할 상품부터 국내에서 하나 둘 만들어 보자는 정도의 ‘수입 대체 전략’이 산업정책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을 채택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전반은 실패했다. 고작 국내 시장을 겨냥한 수입 대체 생필품 산업만으론 결코 국가경제를 일굴 수 없음이 이내 명백해졌다.

▦ 1964년부터 산업정책이 ‘수출 주도 전략’으로 일대 전환됐다. 경제발전의 비전을 찾지 못해 실의에 빠졌던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그 해 대통령 취임 후 첫 연두기자회견에서 ‘수출 진흥을 위한 전력 질주’를 선언했다. 이어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장기영이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나서 일사불란한 수출 진흥정책을 본궤도에 올렸다. 섬유 합판 가발 등 노동집약 상품이 해외로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해 11월 30일 수출 1억달러 돌파를 기념해 ‘수출의 날(현 무역의 날)’이 지정됐다.

▦ 수출품을 해외에 내다 팔고, 벌어 들인 돈을 투자해 기술을 쌓고 더 나은 수출상품을 만들어 내는 선순환을 이뤘다.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출기업에 모든 국가자원과 정부 혜택이 집중될 정도로 매진한 끝에 1977년 수출 100억달러, 1998년 수출 1,000억달러를 각각 달성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선, 전기전자, 철강, 유화 등 중후장대, 고부가가치 산업 수출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2011년 무역규모 1조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후 글로벌 불황과 경쟁 격화의 여파가 국내 핵심 제조업을 강타하면서 우리 수출이 흔들린 게 어제오늘이 아니다. 어제(5일) 무역의 날을 맞아 추정된 올해 무역규모는 9,010억달러로 줄었다. 수출은 전년 대비 8.0%나 감소했던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5.6% 줄 것으로 파악됐다. 2년 연속 수출 실적 감소는 1957~58년간에 이어 58년 만이라고 한다. 수출 세계 순위도 프랑스와 홍콩에 밀려 세계 6위에서 8위로 밀려난단다. 경기 호전만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 수출 재활을 위한 산업구조 재편과 신시장 개척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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