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남서부에 있는 인구 16만 명의 작은 도시 본머스가 들썩였고 동시에 수도 런던의 첼시 팬들도 어깨 춤을 추며 환호했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AFC본머스가 리버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뒤 벌어진 일들이다. 본머스는 5일(한국시간) 리버풀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4라운드 홈경기에서 1-3으로 뒤지다가 막판에 3골을 몰아쳐 거짓말 같은 4-3 역전극을 완성했다.
15분 동안 펼쳐진 기적이었다. 본머스는 전반 20분과 22분, 리버풀의 사디오 마네(24)와 디보크 오리지(21)에게 연속 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후반 11분 페널티킥으로 한 골을 만회했지만 8분 뒤 리버풀 엠레 칸(22)에게 또 한 골을 허용해 1-3으로 끌려갔다. 패색이 짙었지만 본머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후반 31분 라이언 프레이저(22)의 추격 골에 이어 2분 뒤 스티브 쿡(25)의 득점으로 기어이 동점을 만들었다. 무승부로 끝날 것 같던 후반 추가시간 나단 아케(21)가 ‘사고’를 쳤다. 쿡의 중거리 슛을 상대 골키퍼가 쳐내자 아케가 달려들어 마무리했다. 에디 하우(39) 본머스 감독은 “우리 클럽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특별한 날이다”며 “먼저 두 골을 내주면 따라잡기보다는 결과에 복종하는 게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끝까지 굴하지 않았고 일어나기 쉬운 일 대신 대단히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기뻐했다.
반면 지난 8월 20일 번리와 2라운드(0-2 패) 이후 정규리그 11경기 무패(8승3무)가도를 질주하던 리버풀은 상승세에 급제동이 걸렸다. 하우 감독은 “우리는 2년 전만 해도 1부 리그가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리버풀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는 팀이 됐다”고 당찬 소감을 전했다. 본머스는 2014~15시즌 챔피언십(2부)에서 승격해 작년 시즌 16위로 1부 잔류에 성공했고 올해도 당당히 10위를 달리고 있다. 하우 감독은 아르센 벵거(67) 아스날 감독의 후임 사령탑 중 하나로 거론될 정도로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날 역전극의 진짜 승자는 첼시라는 말이 나온다.
리버풀과 아스날, 첼시, 맨체스터 시티 등 4팀의 치열한 선두 다툼 때문이다. 만약 리버풀이 이날 승점 3점을 추가했다면 선두 첼시(11승1무2패ㆍ승점34)를 승점 1점 차로 바짝 추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머스에 발목이 잡혀 9승3무2패(승점 30)로 3위에 머물렀다. 아스날이 9승4무1패(승점 31)로 2위, 리버풀과 승점은 같지만 골득실에서 뒤진 맨체스터 시티가 4위다.
첼시 팬들이 본머스 승리에 더 웃음 짓는 이유는 결승골의 주인공인 나단 아케가 원래 첼시 소속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청소년 대표 출신인 그는 첼시 유스에 입단해 두각을 나타냈고 2013~14시즌 1군 무대에 입성했다. 하지만 당시 조제 무리뉴(53ㆍ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감독에게 중용 받지 못해 2015~16시즌 왓포드, 올 시즌 본머스로 각각 임대를 갔다. 슈퍼스타들이 즐비한 첼시는 당장 뛰기 힘든 유망주를 프리미어리그의 중하위 구단이나 다른 리그로 임대를 보내 실력을 쌓게 한 뒤 다시 데려오는 방식으로 쏠쏠히 재미를 보고 있다.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는’ 장사다. 첼시 팬들은 아케가 내년 시즌 첼시로 복귀해 중앙 미드필더나 수비에서 제 몫을 해 줄 거라 기대하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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