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 비박계가 4월 퇴진을 청와대가 수용해도 조기 퇴진 로드맵에 대한 여야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탄핵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지기로 입장을 바꿨다. 이에 따라 탄핵 가결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 지난 주말 6차 촛불집회는 232만명이라는 헌정 사상 최대 인파가 광장과 거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탄핵을 촉구했다.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반성 없이 탄핵을 멈추게 하려는 꼼수와 버티기로 일관한 데 따른 민심의 분노 표출이었다. 대통령 담화가 6일 예정되어 있지만 탄핵안 표결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부결된다면 후폭풍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면죄부를 받게 된다. 물론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해서 탄핵안을 재발의할 수 있지만 이는 다른 차원이다. 광장 민주주의는 탄핵안 부결을 용납하지 못할 것이다. 광장 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이 최고권력인 주권의 원천임을 천명하고 있다.
지금은 공화정의 이름으로 주권자인 국민이 일시적으로 위임한 권력의 회수를 명하고 있다. 주권자는 대통령의 퇴진과 탄핵을 명령했는데 위임 받은 권력이 이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권력의 원천인 국민은 위임한 권력을 소환할 수밖에 없다. 물론 소환도 법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소환을 가능케 할 대의적 절차가 민의와 현저하게 배치된다면 국가의 최고권력인 주권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헌법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헌정주적 관점에서 탄핵안 부결은 형식논리상 일정 부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동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탄핵안 부결로 인한 동력 약화는 곧 상위 개념인 주권에 의해 즉각 상쇄되고, 민심의 추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개연성이 훨씬 크다.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이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와 헌정주의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헌정주의적 법치주의가 주권의 소재가 국민임을 밝히는 민주주의와 갈등을 빚게 된다면 이는 민의 광장과 사이버 공간이 연대와 협치를 통해 정치의 전면으로 등장할 개연성이 한층 높아진다. 광장의 촛불은 전혀 낯선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의 사망 선고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위임받은 권력은 자의적으로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후진국 정치의 전형인 위임민주주의의 철폐를 요구할 것이다.
현대정치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양대 축으로 움직인다. 정치와 법은 상호보완적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만약에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정치와 법의 긴장은 최고조에 달하고, 탄핵과 퇴진을 요구하는 민심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일상의 입법과 정책이 국회에서 일반의결정족수에 의해 정해지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는 대의민주주의만의 방식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권자가 통치의 전면에 나서는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법치주의가 민주주의에 의해 부정되는 비상 국면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과 소수의 배제로 귀결될 때 중우정치로 전락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면은 인민의 일반 의지(general will)에 의한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면이다. 시민의 에너지가 조직화하고 표출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탁한 권한의 회수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가 탄핵소추를 부결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
광장민주주의는 분명하게 선출된 권력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가능케 하는 위임민주주의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과연 이렇게 엄중한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걸까.
최창렬 용인대 중앙도서관장ㆍ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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