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써봤자 내 편이 되지 않는 게 날씨다. 월별 최고의 해외 여행지를 골라가는 건 기적에 가깝다. 그렇다면, 화끈하게 이곳만큼은 피하라. 12~2월에 간다면 뜯어말리고 싶은 배낭여행지. 물론 ‘운빨’에 기대를 건다면 체념할 수밖에.
12~2월 여행의 최대 변수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초란 극성수기다. 이를 염두에 두지 않은 배낭여행자에겐 가장 불운한 시기다. 비행기 티켓과 숙소 비용에 날개가 돋는 데다가 계절의 저주도 기다린다. 그 격정의 여행지는 단연 유럽. 그나마 1월 말부터 2월경엔 고물가의 족쇄에서 벗어나지만, 변덕 심한 날씨와 비수기의 몸살을 앓는다. 스산한 날씨로 외로움이 옆구리까지 차오른다. 그리스 산토리니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등 관광 도시는 문을 연 ‘맛집’을 찾느라 굶주린 짐승이 되어야 한다. 특히 물가 폭탄의 북유럽은 5~6시간 정도만 해를 영접하니, 폭설과 어둠 사이 가성비가 현격히 떨어진다. 피신할만한 박물관과 갤러리에 관심조차 없다면, 대부분 유럽은 재고 대상지. 반면,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를 제외한 동남아시아는 계절의 축복을 듬뿍 받는 달이다.
▦허탕 치는 꿈, 페루 쿠스코 + 마추픽추
마추픽추를 가는 통과의례 도시인 쿠스코. 12월은 장대비의 은총, 1~2월은 구름과 천둥의 요지경에 빠진다. 사진 속 마추픽추를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허탕 치고 돌아올 확률이 높다. 연중 운무와 친하지만, 이 시기엔 운무를 이불처럼 덮고 있다. 우루밤바 강의 범람으로 잉카 트레일이 끊기는 것도 부지기수. 본격적인 건기는 4월부터다.
▦런던만큼 괴상한 날씨, 벨기에 브뤼헤
유럽은 물론 겨울이 주는 감성 몰이가 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기분을 낼 생각이라면 더욱 말릴 이유가 없다. 단, 특별한 실내ㆍ외 볼거리 없이 걸어야만 제 맛인 도시가 있다. 브뤼헤가 그렇다. 꿈꾸는 동화 전집을 비주얼화한 듯한 유네스코 지정 도시다. 연중 비가 자주 오는 불명예를 앓는데, 12~1월은 그 최고점을 찍는다. 이 평화로운 마을이 한없이 불안해진다. 미련 없이 3월 이후로 여행 계획을 미뤄둘 것.
▦매너 없는 비 세례, 발리 우붓
대략 11월~3월이 우기인 발리. 12월과 1월은 집중 호우 경보가 울린다. 찐득찐득한 불쾌지수의 신세계를 제대로 맛본다. 발리의 우붓은 건기와의 뚜렷한 대조로, 우기 여행이 참 억울해진다. 우비를 벗었다가 입었다가 매너 없이 쏟아지는 비에, 하늘에 삿대질한다. 도로가 침수되는 사태를 만날 수도 있다. 한국의 성수기가 낀 4~9월 건기야말로 신의 섬답다.
▦인내의 실험소, 티베트 라싸
라싸의 겨울은 순례에 나선 라마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계절. 라마가 총 집결하는 시기다. 문제는 압도적인 추위다. 12~1월 평균 기온은 약 영하 9도. 콧물조차 얼 것 같다. 히터가 없거나 있어도 가동에 인색한 숙소도 많은 편. 해발 3,650m로 고산병과의 싸움도 난제다. 폭설로 4,718m의 남초 호수로 가는 길은 두절되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자신의 인내를 실험할 수 있는 최적의 겨울 여행지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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