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3차 대국민 담화에서 강조한 말이다. 박 대통령은 주말마다 200여만명의 국민들이 모여 ‘박근혜 구속’을 외치는 게 전혀 이해도 안 되고 억울하기까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지난 3일 서울 광화문 광장 촛불 집회 중 대형 스크린에 박 대통령의 이 말이 자료 화면으로 뜨자 시민들은 “우~우~”하며 조롱에 가까운 야유를 보냈다. 옆에 있던 한 노인은 “나 원 참”이라며 혀를 찼고, 한 어린이도 “헐”이라며 어처구니 없어 했다. 이 뻔뻔한 말 한마디가 부른 분노가 이날 사상 최대 촛불 집회로 이어졌다.
피고인 최순실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 수석의 공소장만 봐도 박 대통령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검찰 공소장을 통해 드러난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민낯은 민망하기 짝이 없다. 대표적인 예가 박 대통령이 2014년11월27일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만났을 때 최씨의 딸(정유라) 친구네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의 소개 자료를 건네며 현대차 납품을 강요한 일이다. KD코퍼레이션은 이후 20개월 동안 10여억원 어치를 납품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대기업 총수를 만나 월 5,000만원짜리 납품건이 성사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한 셈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오랜 인연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밝힌 최씨는 이 건으로 1,000만원이 넘는 샤넬백과 현금 4,000만원까지 챙겼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의 독대는 필요하고 중요하다. 이런 자리에선 전체 국가 경제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길고 먼 안목의 큰 그림이 그려져야 마땅하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의 고충이 있다면 귀 기울여 들어주고, 기업가 정신이 더 많이 발휘될 수 있도록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제18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런 만남을 자신이 최씨에게 진 ‘빚’을 갚는 데 써버렸다.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가 사적 뒷거래를 위한 깨알 같은 지시로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옆 나라인 중국과 일본은 고강도 개혁을 통해서 경제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의 꿈을 위해 21세기 육상ㆍ해상 신 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추진, 경제의 외형을 넓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아베노믹스’의 세 가지 화살(통화완화, 재정확대, 성장전략)을 통해 기업들의 경쟁력을 살려내고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국가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경제를 살려 일자리와 출산을 늘리는 것이다. 일자리가 없으면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못한다면 갓난 아이의 울음 소리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국가의 존속과 직결된 일이다. 중일은 현재 두 지도자 밑에서 적어도 일자리 걱정은 없는 상태다. 올해도 중국에선 1,0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일본도 실업률이 21년만에 최저치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반면 우리나라는 청년 실업률이 8.5%로,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다. 실질 체감 실업률은 35%에 육박하고 있다. 일자리가 있다 해도 비정규직과 ‘열정페이’만 강요, 일자리의 질은 더 안 좋다.
일자리뿐 아니라 0%대 성장률, 외환위기 수준으로 추락한 제조업 가동률, 2009년 4월 이후 최저인 소비심리절벽까지 대한민국경제호(號)는 이미 침몰 직전의 위기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가 아니라 경제만 봐도 실패한 선장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국민들의 명령마저 거부한 채 시간만 계속 끌고 있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는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침몰하는 대한민국경제호를 살릴 골든타임마저 낭비하고 있다. 한시라도 빨리 선장직을 반납하는 게 박 대통령의 마지막 도리다. 박일근 산업부장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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