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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자 위에 ㄱ자 포갠 듯...마주 선 두 집 '효율적 독립'

입력
2016.12.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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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판교에 지어진 ‘온당’. 형제로 연결된 4인가구와 1인가구가 함께 산다. 형의 집은 가족 중심의 소통 공간, 동생의 집은 젊은 싱글 남성에 맞춰진 공간이다. 이원석 제공
경기 판교에 지어진 ‘온당’. 형제로 연결된 4인가구와 1인가구가 함께 산다. 형의 집은 가족 중심의 소통 공간, 동생의 집은 젊은 싱글 남성에 맞춰진 공간이다. 이원석 제공

옛 공동주택은 주인집과 셋집의 입구가 다르다. 통상 주인집은 정면으로, 셋집은 측면으로 돌아 들어갔다.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보이지 않는 위계 중 하나다. 지난 봄 경기 판교에 들어선 집 ‘온당’에는 4인 가구와 1인 가구가 함께 산다. 주인집은 뒤로 빠지고 셋집이 전면으로 나온 온당의 독특한 구조는 동거의 제1원칙이 친밀감이 아닌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는 자세임을 알려준다.

어린 두 아들을 둔 30대 젊은 부부가 남들보다 조금 일찍 집을 짓게 된 건 불안정한 부동산 시장 때문이다. 언젠가 마당 딸린 단독주택에 살 것을 꿈꾸며 판교 한 주택에 전세 들어 살던 네 가족은 나날이 치솟는 전셋값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좋은 셋집의 조건 “이웃 말고 상품”

“주인집에서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하는데 감당하기 힘든 수준이었어요. 땅값도 어느 순간 훌쩍 뛰었고요. 지금 아니면 집을 못 지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어요.”

이들은 집 두 채를 지어 세입자를 들이는 방법으로 공사비를 충당하기로 했다. 전체 규모를 10이라 했을 때 6대 4 정도의 비율로 한쪽은 4인가족을 위한 집, 한쪽은 신혼부부나 친구끼리 같이 사는 집을 계획했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윤주연(OfAAㆍ적정건축), 정승식(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 에게 부부가 요구한 것은 “‘어깨 맞대고 같이 사는 이웃집’이 아닌 ‘매력적인 상품’으로서의 셋집”을 지어달라는 것이었다. 은행 대출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세입자로 있으면서 주인집과 셋집의 미묘한 권력관계를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세 들어 살던 집은 소위 말하는 땅콩집이었어요. 두 채가 나란히 붙어 마당을 공유했는데, 세 들어 사는 처지에선 아이들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눈치 보지 않을 수 없었죠.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면 공유가 큰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당은 주인집 전용으로 하고 대신 셋집에는 옥상 정원과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를 주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마당을 둘러싼 두 채 중 오른쪽이 주인집, 왼쪽이 셋집이다. 주인집은 1층 테라스를 통해 마당을 점유하고 대신 셋집은 지붕의 작은 정원과 긴 다락을 소유한다. 이원석 제공
마당을 둘러싼 두 채 중 오른쪽이 주인집, 왼쪽이 셋집이다. 주인집은 1층 테라스를 통해 마당을 점유하고 대신 셋집은 지붕의 작은 정원과 긴 다락을 소유한다. 이원석 제공
온당 외관. 파란색 문이 주인집의 차고이고 그 옆으로 셋집의 주차장과 현관문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2층부터 셋집의 생활공간이 펼쳐진다. 주인집 현관문은 집 측면에 따로 냈다. 이원석 제공
온당 외관. 파란색 문이 주인집의 차고이고 그 옆으로 셋집의 주차장과 현관문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2층부터 셋집의 생활공간이 펼쳐진다. 주인집 현관문은 집 측면에 따로 냈다. 이원석 제공

마당 딸린 주인집과 마당 없이도 충분히 매력적인 셋집. 그러나 두 채 모두 만족스럽게 짓기엔 대지 226.8㎡(68평)는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마당에 땅의 절반 가량을 할애하고 자동차 2대가 들어갈 주차공간을 제외하자 집에 쓸 수 있는 바닥면적은 76.25㎡(23평) 남짓이었다.

“남은 면적을 수평으로 나누면 한 집당 공간이 너무 작아져요. 실내에 계단을 넣어야 하는데 그럼 더 비좁아지고 결국 하루 종일 계단만 오르내리는 집이 될 수도 있죠. 그렇다고 수직으로 분리하면 소음문제도 있고 두 집 간 독립성이 떨어집니다. 부족한 바닥 면적을 극복하고 프라이버시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건축가는 ‘ㄴ’자 블록 위에 ‘ㄱ’자 블록을 테트리스처럼 끼워 맞추는 조합을 고안했다. ‘ㄴ’자는 주인집으로 1층의 바닥면적 전부와 2층 일부를 사용할 수 있다. ‘ㄱ’자의 셋집은 계단을 통해 올라가 2층을 넓게 사용하는 구조다. 윤 소장은 여기에 박공지붕을 이용한 다락을 추가해 주인집은 3개층을, 셋집은 2개층을 쓸 수 있게 했다.

세대 배치를 보여주는 그림. 연두색이 셋집, 노란색이 주인집이다. 노란색 도형 위에 연두색 도형을 테트리스처럼 얹었다. 적정건축 제공
세대 배치를 보여주는 그림. 연두색이 셋집, 노란색이 주인집이다. 노란색 도형 위에 연두색 도형을 테트리스처럼 얹었다. 적정건축 제공

“바닥 면적을 나누지 않아 각자 필요한 생활 공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주인집과 셋집이 1층에서 만나지 않기 때문에 독립성이 더 강해지기도 하고요. 양쪽이 맞물리는 2층과 다락층도 단차를 조금씩 달리해 서로 방해가 없도록 했어요.”

셋집이 2층으로 올라가니 마당의 사용권도 자연스럽게 주인집으로 넘어갔다. 대신 전면에 붙박이식 서가를 설치한 긴 다락과 거기서 이어지는 옥상 정원은 셋집의 몫이 됐다. 건축가는 주인집 현관을 집 측면에, 셋집 현관을 정면에 냈다. “세입자가 옆으로 돌아들어가기보다 자기 집처럼 당당하게 출입할 수 있으면 했어요. 도로에 접하는 집의 전면이 셋집의 입면이라 바깥에서 보면 집 전체가 셋집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게 건축주가 요구한 ‘매력적인 상품’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족의 공간 vs 남자의 로망

건물이 완공되기도 전, 뜻밖에 동거인이 정해졌다. 인근 회사로 직장을 옮긴 남편의 남동생이 살 곳을 찾다가 형네 가족과 지분을 나누면서 공동명의로 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젊은 싱글 남성이 입주하면서 양쪽 집은 완전히 다른 성격을 띠게 됐다. 주인집은 소통을 중시하는 가족적인 공간이다.

“각자 방에 틀어박히기보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가족의 생활이 많이 겹쳐졌으면 했어요. 어릴 때 저는 식탁에서 공부하고 맞은편에선 엄마가 마늘을 까던 장면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거든요.”

아내의 바람에 따라 1층은 거실과 주방, 서재가 있는 가족 공용공간으로 꾸며졌다. 창가를 따라 설치한 긴 테이블 위에서 아이들은 숙제를 하고 엄마 아빠는 서재 옆 소파 위에서 책을 보거나 태블릿PC로 작업을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층의 침실엔 침대만 들여 놓고 TV와 컴퓨터는 다락으로 올려, 침대 위에서 밥도 먹고 TV도 보는 이른바 멀티태스킹을 원천 차단했다.

주인집 거실. 긴 테이블 위에서 아들 둘이 숙제를 하면 엄마 아빠가 소파에서 책을 보는 풍경을 꿈꿨다. 이원석 제공
주인집 거실. 긴 테이블 위에서 아들 둘이 숙제를 하면 엄마 아빠가 소파에서 책을 보는 풍경을 꿈꿨다. 이원석 제공
주인집 주방. 커튼을 열면 전면 유리창을 통해 마당이 내다 보인다. 이원석 제공
주인집 주방. 커튼을 열면 전면 유리창을 통해 마당이 내다 보인다. 이원석 제공
파란색이 주인집 차고, 그 옆이 셋집의 주차장이다. 차고에 특히 로망이 컸던 남편을 위해 개폐식 차고를 디자인했다. 이원석 제공
파란색이 주인집 차고, 그 옆이 셋집의 주차장이다. 차고에 특히 로망이 컸던 남편을 위해 개폐식 차고를 디자인했다. 이원석 제공

마당을 향해 난 전면창으로는 자연이 한껏 들어온다. 마당과 실내 사이에 나무 데크를 깐 좁은 사이공간을 만들었는데, 여름에 접이식 문을 열면 툇마루처럼 쓸 수 있고 겨울에 문을 닫으면 온실처럼 후끈후끈하다. 아내는 이 공간을 ‘선 룸(sun room)’이라 부르며 가장 좋아하는 장소로 꼽았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극히 적지만 어쩌다 혼자가 될 때는 여기 나와 있어요. 비올 땐 비소리 들으며 차 마시고 밝을 땐 햇볕 쪼이며 앉아 있고요.”

남편을 위한 공간도 있다. 이전 집에 차고가 없어 고생한 남편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차고가 반드시 있길 바랐고 이를 위해 실내공간 일부를 포기할 생각도 있다고 밝혔다. 남편에게서 차고에 대한 로망을 읽은 건축가는 단순히 차를 주차하는 공간이 아닌 취미 활동을 겸할 수 있는 개폐식 차고를 떠올렸다. “스티브 잡스의 창업 장소가 된 차고처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공간이면 했어요. 마침 남편 분 취미가 목공이라 차 대는 곳 옆에 작은 창고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목공작업을 할 수도 있고 차를 튜닝할 수도 있겠죠. 몸을 쓰는 공간이 많아지면 그만큼 생활도 풍성해집니다.”

주인 세대가 복작대는 살림집이라면 동생의 집은 완전히 딴 세계다. ‘게임회사에 다니며 고양이와 함께 사는 30대 초반 싱글 남성’에서 떠올릴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방 두 개 중 하나는 집 주인의 침실, 하나는 옷가지와 잡동사니, 그리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친구들을 재우는 방으로 쓰인다. 다락의 서가는 레고 블럭 모형을 전시하는 진열대가 됐고, 맞은편에 설치한 긴 탁자엔 컴퓨터 3대를 나란히 놓아 PC방 부럽지 않은 환경을 갖췄다. 다락 한 켠엔 빔 프로젝터와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침대에 누워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동생집 거실. 거실 천장을 다락까지 시원하게 터서 좁은 느낌이 없다. 이원석 제공
동생집 거실. 거실 천장을 다락까지 시원하게 터서 좁은 느낌이 없다. 이원석 제공
0동생집의 다락방. 전면 서가엔 레고블록을 진열하고, 맞은편엔 컴퓨터 3대를 놓았다. 주인집 남편을 비롯해 어린 아들들도 탐내는 공간이다. 이원석 제공
0동생집의 다락방. 전면 서가엔 레고블록을 진열하고, 맞은편엔 컴퓨터 3대를 놓았다. 주인집 남편을 비롯해 어린 아들들도 탐내는 공간이다. 이원석 제공

“친구들과 컴퓨터로 게임 하다가 다 같이 차 타고 농구하러 가곤 하더라고요. 한 마디로 남자의 로망 같은 공간이죠. 저희 신랑도 여기서 살고 싶대요(웃음).”

지난 봄은 입주하고 맞은 첫 봄이다. 가족은 마당 일부를 텃밭으로 일궈 상추, 아스파라거스, 호박, 가지 등을 심었다. 엄마와 아빠가 모종을 심고 가지를 치며 땀을 흘리는 동안 큰 아이는 곁에서 흙장난을 치고 둘째는 툇마루 위에서 뒹굴며 놀았다. 꿈꾸던 단독주택에서의 한 철을 그렇게 함께 보냈다.

밤에 본 온당 외관. 이원석 제공
밤에 본 온당 외관. 이원석 제공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건축개요

위치: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용도: 다가구주택

대지 면적: 226.80㎡

건축 면적: 113.33㎡

연면적: 207.87㎡

규모: 지상 2층

높이: 8.85m

건폐율: 49.97%

용적률: 91.65%

구조: 일반목구조

설계: 윤주연(적정건축), 정승식(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시공: 이든하임

1층평면도. 1층엔 주인집 거실과 셋집의 계단실, 마당과 주차장이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1층평면도. 1층엔 주인집 거실과 셋집의 계단실, 마당과 주차장이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2층 평면도. 셋집과 주인집 생활공간 일부가 맞물려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2층 평면도. 셋집과 주인집 생활공간 일부가 맞물려 있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단면도. 왼쪽이 셋집, 오른쪽이 주인집이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단면도. 왼쪽이 셋집, 오른쪽이 주인집이다.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인C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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