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매치’라는 이름에 걸 맞는 명승부였다.
프로축구 FC서울과 수원 삼성이 맞대결을 벌인 FA컵 결승 2차전이 열린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 3만5,000명이 넘는 팬이 운집했다. 지난 달 27일 1차전에서 1-2로 패한 서울은 이날 선제골을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지만 후반 30분과 추가시간에 터진 동점, 역전 골에 힘입어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연장에 이은 승부차기에서 양 팀은 1~9번 키커가 모두 골을 성공시켜 9-9까지 맞섰다. 마지막 키커는 골키퍼였다. 서울 유상훈(27)의 슛이 골대 위로 솟구친 반면 수원 양형모(25)는 침착하게 그물을 갈라 2시간30분 넘는 혈투에 마침표를 찍었다. 수원은 2010년 이후 6년 만에 FA컵 정상에 올랐다.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7위에 그친 수모를 털어내며 내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권도 거머쥐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수원 ‘주장’ 염기훈(33)이었다. 역대 FA컵 MVP 2회 수상은 그가 처음이다.
염기훈과 수원의 인연은 남다르다. 대학시절까지 무명에 가깝던 염기훈은 2006년 전북 현대에 입단해 호쾌한 왼발 킥과 빠른 스피드로 신인왕에 올랐다. 이듬해인 2007년 여름 수원 이적을 눈앞에 뒀지만 그를 수원으로 보내기 싫었던 전북이 울산 현대로 트레이드 시켜버렸다. 전북(현대자동차)과 울산(현대중공업)은 모기업이 현대 계열로 사촌 구단이다. 2010년 2월 수원은 염기훈에게 한 번 더 러브콜을 보냈다. 모든 협상이 순조롭게 끝나고 발표만 남은 상황에서 그는 훈련 도중 왼쪽 새끼발가락 골절 부상을 당했다. 정식 계약서를 쓰기 전이라 이적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지만 당시 차범근(63) 수원 감독이 “선수가 다쳤으면 우리가 회복시켜서 쓰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해 겨우 성사됐다.
우여곡절 끝에 수원 유니폼을 입은 염기훈은 입단 첫 해인 2010년 팀을 FA컵 정상에 올려놓으며 MVP에 선정됐다.
2012년과 2013년 경찰축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뒤 염기훈은 더욱 성숙해졌다. 그는 2014년부터 3년 동안 주장 완장을 차고 35경기, 35경기, 34경기를 각각 소화했다. 30대에도 이처럼 뛸 수 있는 건 자기관리가 철저하다는 의미다. 작년과 올해는 2년 연속 도움왕에 올라 ‘회춘했다’는 평을 들었다.
작년 여름 중동 클럽이 연봉 13억 원에 염기훈을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하고 수원과 3년 4개월 재계약을 했다. 은퇴 전까지 수원에서 뼈를 묻겠다는 의지였다.
올 시즌 염기훈은 축구 인생에서 가장 힘든 한 해를 보냈다. 전력 보강을 제대로 못한 팀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지난 10월 2일 수원FC와 ‘수원 더비’에서 4-5로 패하자 폭발한 수원 팬들은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항의했다. 염기훈은 그들 앞에서 “절대 강등권으로 떨어지지 않겠다”고 눈물을 흘리며 약속했다.
이날 FA컵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염기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그는 “올 시즌 정말 힘들었다. 팬들이 (홧김에) 원정 팀에게 환호를 보내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기쁨보다 힘들었던 기억에 울컥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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