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한국인 2세로 아시아계 미국인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다이빙 전설’ 새미 리가 2일 숨졌다. 향년 96세. 3일(현지시간)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은 고인이 2일 오후 8시께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고 전했다.
리는 1920년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태어났다.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10m 플랫폼 남자부문에서 우승, 아시아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같은 대회 3m 스프링보드 남자부문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1952년 헬싱키올림픽 10m 플랫폼 남자부문에서 다시 금메달을 차지, 올림픽 다이빙 단일 종목에서 역사상 최초로 2연패를 달성한 선수이자 최고령(32세)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성공은 선수활동에 국한되지 않았다. 은퇴 후에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의학을 전공해 이비인후과 의사로 변신, 1953~55년 주한미군 군의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미국 다이빙 종목 지도자로서도 꾸준히 활동해 팻 매코믹ㆍ밥 웹스터ㆍ그렉 루가니스 등 훗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선수를 지도했다. 1968년 국제수영명예의전당, 1990년 미국올림픽명예의전당에 올랐다.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리는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사건을 겪어야 했다. 195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집을 구하려다 “주변 주민이 반발하고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이유로 두 차례나 거부당한 것. 올림픽 영웅이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차별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리처드 닉슨 당시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돕겠다고 나서는 등 미국 사회에 큰 파문이 일었다. 리는 결국 오렌지카운티에 정착해 “미국 사회에 대한 내 믿음이 입증됐다”는 발언을 남겼다. 유족으로 부인 로잘린드 웡과 자녀 2명이 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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